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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공의 시호는 문절(文節)인가 문정(文貞)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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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문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1:13 조회1,8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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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 서계공(朴世堂 西溪公)시호에 관하여
조선조 후기 문신이자 조선조의 실학의 장을 열어, 이중환(李重煥)·안정복(安鼎福) 등보다 앞선 시대의 실학파 학자로서, 농촌생활에 토대를 둔 박물학(博物學)의 학풍을 이룩하신 분이고 서계공의 종손이 종손 댁에 보관 중이던 옛 문헌 등 고문선 기타 중요자료를 국가에 기증함으로 서계공을 재평가했으며 우리의 가문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우리 반남박씨 가문을 크게 빛내신 분이신 서계공의 시호가 문헌마디 다르게 발표가 되어있고 우리 종원들, 종중의 중요한 자료. 심지어는 서계공의 후손 들 까지도 잘못 아는 분들이 많기에 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문정공은 알지만, 옛 어른들이 문절공이라고 해서 문절이라고 한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단다)

정신문화원(현재는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 『족보(병술보부터 경신보에 까지).』 『반남박씨 편람』. 등 기타 여러 문헌에 보면 시호가 문절(文節)로 되어있고 오직 두산동아백과사전에만 문정(文貞)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궁금하게 여기던 차에 얼마 전 장암동 서계공 댁을 방문하여 서계공의 12대 종손이신 용우씨에게 문의한 결과 본래 경종 2년 7월 30일 문절이란 시호가 내려졌으나
경종 3년 11월 문정 이란 시호로 개시(改諡)된 박세당의 시호서경 완의(諡號暑經完議)가 다시 내려 왔다.
앞으로는 서계공의 시호를 문정(文貞)으로 하여 서계공 혹은 문정공으로 칭함이 올바르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우리 반남 박씨 문중에 문정(文貞)이란 시호를 받으신 분이 남일공 박응남 할아버님을 비롯하여 금양위 박미 할아버님, 서계공 박세당. 박종갑. 박종훈등 5분이 문정이란 시호를 받으셨으며

참고로 판서를 지내신 금원군 박사익(朴師益) 이분 역시 한국민족문화대사전 두산동아백과사전에는 장익(章翼)이란 시호로 되어있고 문과방목에는 장효로 되어있다.
금원군의 시호가 본래는 장효 이었으나 (영조 24년10월3일)
이분도 장익으로 시호가 개시(영조37년6월2일) 되였으므로 혼란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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