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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와 본관

시조와 본관

ik07.png 본관의 유래

반남박씨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후예로, 고려 고종 때 반남현 호장을 역임한 휘 박응주를 반남박씨의 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본관이 반남이 된 유래는 4세 휘 박수(朴秀)의 계축호적(癸丑戶籍)에 본(本)은 반남(潘南)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5세 휘 박상충이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이 예조정랑에 이르렀고 반남선생이라 하였으며 6세 휘 박은이 조선조 태종을 도와 익대동덕좌명공신으로 반남군에 봉해졌다가 반남현이 나주에 속하게 되어 금천군으로 개봉(改奉)되었다가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으로 진봉(進奉)된 연유로 해서 호장공으로부터 여러 대 살아 온 반남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ik07.png 시조(始祖) 박응주(朴應珠)

시조(始祖) 호장공은 박혁거세의 혈손으로 전하고있은나 상계가 실전되어 정확한 계대룰 알 수 없고 고려 고종때 반남현 호장을지냈으며 공이 반남호장이 되었을 때 본현의 촌락은 천호 백호의 집단이면 모두 호장을 두어서 관활(管轄)하게 하였는데 공은 그중의 일인이였다.

그때 관인이 석천암(石泉庵)에 보존되었던 것이 영조(英祖) 경신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의암(義庵) 회원(會源) 가승에서)

 

park01.jpg

 

 

ik07.png 호장이란

향직(鄕職)의 우두머리로 고려 초 성종때, 신라 때부터 지방에 세력을 펴고 있던 성주(城主)나 호족(豪族)을 그대로 포섭하여 호장·부호장의 향직을 준 데서 부터 시작되었으며, 지방자치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983년(성종 2)에 고려 태조(太祖) 때의 당대등(堂大等)을 호장, 장대등(長大等을 부호장이라 고쳤으며, 목종 때는 호장으로 70세가 넘으면 안일(安逸)에 속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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