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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승 종인께서 "판관공 묘갈명에 족산(族山)을 족장(族葬)으로 변조 해놓아 한자로 인해 혼란스럽게 하고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기에,
대종중 사무실에 들러 판관공 묘갈문 원문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적편에 나오는 원문을 보니 ".....實柳氏族山也....."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적편의 번역문은 "..... 實은 柳氏族의 山이다. ....."로 되어 있어 찬승 종인께서 말씀하시는 것과는 오히려 반대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소고문집>의 원문을 보니 해당 부분이 "..... 實柳氏族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소고문집>의 원문이 "葬"으로 되어 있으며 "也"자가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族山을 族葬으로 변조"한 것은 세적편이 아니라 <소고문집>의 원문이 됩니다. 따라서 "변조"의 책임은 세적편 편찬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소고문집>을 편찬하신 분들께 있게 됩니다. 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소고문집> 해제에 보니, 문집의 원집은 1600년(선조 33), 속집은 1782년(정조 6)에 간행되었다고 하니 그 때 "변조"가 일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여러 본들을 비교 검토하여 정확한 고증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族山을 族葬으로 변조"한 것은 경신보의 세적편 편찬자들도 아니고, 세적편을 인쇄한 "인쇄소의 소행"도 아니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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