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원과 화평옹주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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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휘 박명원(朴明源) 1725(영조 1)~1790(정조 14). 師正--
자는 회보(晦甫), 호는 만보정(晩보亭). 정조 賜號 晩葆亭 예조참판 사정(師正)의 아들이다.
1738년(영조 14)영조의 제3녀 (和平翁主)에게 장가들어 금성위(錦城尉)에 봉하여졌으며 영조의 깊은 사랑 을 받았다. 처음 순의대부(順義大夫)를 받았으나, 뒤에 유록대부(綏祿大夫)에 승진되었다.
글씨를 잘 써서 나라에 경사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金玉寶冊銘旌書官)이 되었는데, 모두 10여 차례에 이르렀다.
1776년(영조 52)삼절연공 겸 사은사(三節年貢兼謝恩使),
1780년(정조 4)진하 겸 사은사,
1784년 사은사 등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정사로 파견되었다.
몸가짐에 절도가 있었으며, 검소하였고 또한 풍류와 운치가 있었다. 諡號 忠僖
1738년(영조 14) 영조의 딸과 결혼, 금성위(錦城尉)에 봉해지고, 품계가 수록대부(綏祿大夫)에 이르렀다.
1776년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3차례나 사은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글씨를 잘 썼으므로 나라의 경애사(慶哀事) 때 여러 차례 금옥보책 명정서관(金玉寶冊銘旌書官)으로 임명되었다.
죽은 뒤 정조는 친히 글을 지어 파주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다. 글씨에 경기 장단(長湍)에 있는 《국구오흥부원군 김한구표(國舅鰲興府院君金漢耈表)》가 있다.
※ 묘; 파주군 주내면 마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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