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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유박사(諄諭博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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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우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30 09:11 조회1,8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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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유박사(諄諭博士)

고려 말 성균관에 설치한 관직의 명칭, 고려 성종(成宗)11년(992)에 설치된 국립교육기관인 국자감(國子監)은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처 명칭이 변경 되였는데 충렬왕 34년(1308)에 충선왕(忠宣王)이 복위하여 성균감(成均監)을 성균관(成均館)으로 개칭하고 관원을 정리하였는데 그 교관으로서 순유박사 (諄諭博士)를 두었다 정원은 2인 이고 품계는 종7품이었음, 그뒤 공민왕 5년(1356) 성균관을 국자감으로 개칭 하였을때 순유박사를 폐지하고 품계를 정8품으로 낮추어 사문박사(四門博士)를 두었음,동왕 11년(1362) 다시 성균관으로 개칭한 뒤에 다시 사문박사를 순유박사라 하고 품계를 종7품으로 올렸음 조선조에서는 태조원년에 성균관의 순유박사를 종7품 관직으로 하였으나 태종11년(1411)에 이를 폐지하였음,




진사(進士) 와 진사시(進士試)

고려 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을 진사라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소과(小科)의 하나인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사람을 진사라 하였음,

진사시험은 고려시대에는 국자감시(國子監試)를 별칭으로 진사시 라 하고 성균시(成均試) 남성시(南省試) 라고도 하였다 덕종(德宗)즉위년(1031)에 처음 실시하여 부(賦) 시(詩)로 진사를 뽑았음,

조선시대에는 소과(小科)의 하나인 생원시(生員試)와 함께 사마시(司馬試)라고도 하였다 생원시는 유교경전에 대한 지식을 시험하고 진사시는 시(詩)와 부(賦)의 창작 능력을 시험하여 그 합격자를 각각 생원,진사,라 하였다 생원시는 조선 초기부터 실시 하였으며 진사시는 세종20년(1438)처음 실시하였다가 이내 폐지 되었고 다시 단종원년(1453)에 복설되여 고종 31년(1894)까지 계속되였음,

진사초시합격자,한성-200인,경기-60인,충청,전라-각90인,경상-100인,강원,평양-각45인,황해,영안도-각35인,(觀察使 또는 差使員이 試取,)

시험과목-- 賦1篇, 古詩, 銘, 箴, 中1篇

진사복시합격자,100인 (예조에서 試取 )

시험과목-- (講),小學,家禮,(製述),同初試(초시와 같다)(經國大典)

                

                         숙천공후 원우(동일)조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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