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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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7:55 조회1,923회 댓글0건본문
감사합니다.
저도 그저께 고전 전문가에게 문의해 본 결과
그 분께서는
誘자가 諭자의 오자(또는 동자/속자)일 가능성을 지적하셨습니다.
즉 諭를 誘로 잘못 썼거나
아니면 두 글자가 옛날에는 서로 통용되는 글자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첫 족보인 임오보에는 없던 말이
그 다음 족보인 계해보부터 들어가 있군요.
따라서 제 생각으로는 순유(諄誘 또는 諄諭)와 진사(進士)는
별개의 용어로 나누어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추측됩니다만
물론 확신은 없습니다.
진사(進士)를 별도로 분리할 경우 諄誘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1. 諄誘 = 諄諭박사 의 약칭. (단 誘는 諭의 오자이거나 동자/속자).
2. 諄誘를 자(字)로 보는 해석. (실제로 대종중 역대인물소개에서는 진사공의 字로 보고 있음). 그러나 우리 족보에 字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5세 文正公부터이므로 다소 무리가 있는 해석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물론 순유진사를 한덩어리로 해석하는 방법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참고로 나주나씨 웹에도 순유진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물론 유자는 誘가 아닌 諭를 쓰고 있어 진사공의 경우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다음은 나주나씨 웹에서 따온 것입니다.
<낙천와공 신도비(樂天窩公 神道碑):
나주나씨 금양군파 파조인 휘(諱) 碩의 장자로 호는 낙천와(樂天窩)이며 휘는 仲佑이다 고려 공민왕때 순유진사(諄諭進士)와 중문과(中文科) 식년시(式年試)급제(及第)하여 중정대부(中正大夫) 전교시령(典校寺令)을 지냈으며 예문관(藝文관) 지제고(知製誥)와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編修官)을 역임 하였으나 고려의 國運이 다하고 朝鮮朝가 開國하니 公은 節義를 지켜 김제 입천(현 김제시.신풍동)에 둔거잠정(遯居潛靜)하니 太祖께서 右議政으로 세차례나 불렀으나 충신(忠臣)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여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한번더 관리자님의 노고와 친절하신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승자 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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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 아저씨
> 순유(諄誘) 진사에 대한 자료가 없네요
>
> 국사편찬위원회 면식이 있는 분에게 여쭈어 보았는데 정확한 답변을 듣지를 못했고 비슷한
> 순유박사 [諄諭博士]; 고려 후기, 조선조 전기에 유학 교육을 담당한 성균관(成均館)의 종7품 관직.
>
> 순유(諄誘)진사가 성균관에 있었던 벼슬이 안닌가 생각되고 자세한 조사를 하여 다음에 알려주다고 하였기에 우선 확실하지는 않으나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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