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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모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6:45 조회1,8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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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형 종친의 "뿌리 찾기" 노력은 정말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나아가 모든 종인들께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비는 마음이 한결같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위의 찬이 종친의 글을 약간 '오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찬이 종친의 글을 읽고 제가 느낀 바로는 우형 종친의 조상 찾기 노력에 대한 비난의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찬이 종친이 쓴 글의 의도는 족보 편찬을 할 때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신중치 못한 등재가 나중에 난처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글이라 판단됩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교적 자세한 기록으로 알려져 있는 을유보(1825)를 보면, 이인좌의 난 연루자 필현 할아버지는 복주(伏誅)되셨고 두 아드님 모두 복주, 좌주(坐誅)되셔서 후손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필몽 할아버지도 복주되셨고 세 아드님중 첫째와 셋째는 각각 복주, 좌주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째 아드님 사민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복주, 좌주, 좌적, 무후, 요(夭) 등 아무런 표시가 없는 걸로 미루어 '행방불명'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필량 할아버지는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두 아드님 중 첫째 사공 할아버지는 경인년(1710)에 태어나셔서 정미년(1727)(이인좌의 난 한해 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 있고 후손은 없는 것(무후)으로 기록되어 있군요. 둘째 사묵 할아버지는 좌적(坐謫)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세 가지 가능성이 있지 않나 추측해 봅니다.
1. 필몽-사민 가능성.
2. 필량-사공 가능성.
3. 필량-사묵 가능성.
위의 가능성 중에서 2번 가능성은 좀 낮아 보이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을 떠난 분이기 때문에 벌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현재 상황에서는 우형 종친의 선대 어른들이 최초로 족보에 연결된 사정을 파악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갑자보(1924), 무술보(1958), 경신보(1980) 중 경신보에서 처음으로 연결이 되었다면 그리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니까 주변의 집안 어른들 중에 경신보 수단시의 상황을 아시는 분들이 계실 터이니 그 분들께 문의해 보시는 것이 보다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경신보 당시 족보에 등재가 되었다면 그 근거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너무 상심하지 말고 끈기 있게 문의하고 조사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우형 종친의 뿌리 찾기 노력에 격려와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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