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세종’ 장인 심온이 태종의 제거 표적된 속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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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5:55 조회2,054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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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세종’ 장인 심온이 태종의 제거 표적된 속사정은
[뉴스엔 조은영 기자]
25일 방송된 KBS 2TV 대하사극 '대왕세종'에서 태종(김영철 분)은
'강상인의 옥사'를 일으키며 최종적으로 세종(김상경 분)의 장인이자 정치적 스승이었던 심온을 표적에 뒀다.
태종은 박은을 불러 병조참판 강상인과 병조판서 박습의 입을 통해 상왕으로부터 군권을 탈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수괴가 심온이라는 답을 받아내라고 명했다.
자신의 신하들을 지키고 싶었던 세종은 태종을 찾아 다른 길을 없는 것이냐며 있다면 가르침을 달라고 청하지만
태종은 “강한 군주만이 신하를 지킬 수 있다. 강한 군주가 되려면 그들을 다스리고 절대 복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신하를 잃게 될 것”이라며 냉정하게 세종의 청을 잘랐다.
태종은 권세를 탐했던 민무구, 민무질 등 원경왕후(최명길)의 민씨일가와 달리 강직하고
청렴결백했던 심온 마저 표적에 두고 제거하려한 이유는 무엇일까?청렴 근면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명망이 높았던 심온의 아버지 심덕부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일등공신이며 11살에 무과에 급제한 심온도 대하사극 '대왕세종'이 그렸던 것처럼 정치적 신념과 청렴 강직한 행동으로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또 태종에게 시대를 이끌어가는 관리로서의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심온의 딸인 소헌왕후(이윤지 분)의 지극한 덕행이나 긍정적 사고, 포용과 관용의 미덕을 지녔던 세종 모두 아버지이자 정치적 스승이었던 심온의 영향이 지대했다.
심온은 태종 시절 조정의 관리들을 감찰하는 사헌부 대사헌으로 임명돼 권력남용이 극심했던 개국공신 하륜을 탄핵하기도 했고 태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노비변정도감'같은 새로운 개혁의 추진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후 양녕(박상민 분)의 폐위와 함께 사위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고 이어 두달만에 왕으로 등극하면서 심온은 44세의 나이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인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종이 즉위하자 청천부원군에 봉해지고 영의정으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돼 명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우 도총제 심정이 상왕의 군국 대사 처리에 불만을 말하는 것을 병조좌랑 안현오가 밀고하면서 그 수괴로 지목돼 귀국 도중 의주에서 추포돼 한양으로 압송됐다. 사은사로 명에 다녀온 후 은퇴하고 조용히 여생을 살고자 했던 심온에겐 청천병력 같은 일이었다. 이후 압술형 등 가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태종이 원하는 거짓 답을 토설한 심온에게 자결하라는 명이 내려지고 수원에서 사사된다. 이처럼 태종이 강직하고 청렴하며 모범적인 관료였던
심온을 제거하고자 정치공작을 편 것은 대하사극 ‘대왕세종’에서처럼
심온의 사은사 행사 길에 구름처럼 밀려든 환송인파로 도성이 텅빌 정도였다는 보고에 충격을 받으면서 가시화됐다.
심온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정통 무신의 길을 걸었던 심온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만큼 후일 세종의 왕권을 위협하는 힘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태종의 판단이었다.
따라서 나라를 안전하게 보전해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일체의 위험한 도전이나 모험을 허락하지 않았던 태종의 입장에서 외척인 심온을 제거한 것은 결국 세종의 안정적인 치세를 위함이었다.
그러나 심온은 훗날 의심스런 옥사였다는 신료들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문종 1년에 무고로 밝져 복관되고 안효공이란 시호를 받게 된다.
조은영 hhelloe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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