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 현목유비 반남박씨 186주기 제향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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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서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5:51 조회1,914회 댓글0건본문

2008년 휘경원 현목유비제향봉행.jpg

2008년 휘경원 현목유비제향봉행 3.jpg
정조대왕 현목유비 반남박씨 186주기 제향 을 남양주 소재 휘경원에서
2008년 5월 25일 정오에 봉행하였다.
우리 문중에서는 아헌관에 참봉공후 찬목씨가 봉헌하였으며
대종중 대표로 찬혁씨를 비롯하여 경기지회장 승원(호군공후) 승만(참봉공후) 찬경(활당공후) 찬혁(공순공후) 문양(세양공후)등 21분에 제향 봉행에 참여를 했습니다.
휘경원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 부평리 167
사적 제360호
휘경원은 제 22대 정조대왕의 후궁이며
제 23대 순조의 생모인 유비 반남박씨(1770~1832)의 묘다
유비 박씨는 본관은 반남, 좌찬성 박준원의 딸로
정조 11년(1787년)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숙선옹주를 낳고 빈으로 봉해져 가순궁에 거쳐하였고 예절과 행실이 바르고 근검절약하는 성품으로 칭송을 받았다.
순조22년 12월 창덕궁 보경당에서 별세하였다
시호는 현목이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38(1901)/10/11(양력) / 현목유빈을 유비로 높여 봉하다 》
현목 유빈(顯穆綏嬪)을 유비(綏妃) 로 높여 봉하고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올리는 의식을 대신 진행하였으며 축하를 올리고 조서(詔書)를 반포하였는데 간략한 의식으로 하였다.
동대문 밖 배봉산 자락에 묘를 쓰고 휘경원이라 정하였다.
철종 6년(1855년) 인릉(순조의능)의 천장지를 구하면서 휘경원도 옮기기로 하여 진전읍 내각리 순강원 뒤로 옮겼다가
철종14년(1863)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조선시대 역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임금의 생모인 일곱 후궁의 신위를 모신 칠궁(종로구 궁정도 소재)내의 경우궁에 신위가 봉안되었다.
묘역은 곡장을 두루고 봉분과 석물을 배치 하였는데 봉분에는 24개의 사대석읠 원형으로 둘렀으며 세밀하게 만든 석호와 양석이 있다.
봉분앞에는 망주석 및 장명등과 좌우에 문인석이 있다.
묘역 아래에는 홍살문을 중심으로 신도가 있고 정면에 정자각이 있고 좌측으로 어수정 우측에는 능표각이 있는데 능표는 팔작지붕형 옥개석을 올린 형태로
‘유명조선국현목유빈휘경원’ 이라고 써있다.
19세 휘 박준원(朴準源) 1739(영조 15)~1807(순조 7).
응천-동민-환-세성-태원-弼履--사석-準源-綏嬪朴氏--23대純祖
자는 평숙(平叔), 호는 금석(錦石).
공주판관을 지낸 (師錫)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기계유씨(杞溪兪氏)로 수기(受基)의 딸이다. (金亮行)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육경(六經)과 백가(百家)의 글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맏형 (胤源)과 함께 서로 학문을 강론하였다.
1786년(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1그의 제3녀가 유빈(綏嬪)으로 뽑히자,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거쳐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공조좌랑.보은현감이 되었다.
1790년 수빈이 원자(元子:후일의 純祖)를 낳자 그는 호산(護産)의 노고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호조참의에 임명되었고
, 항상 대궐 안에 머물면서 원자를 보호하고 보도(輔導)하였다.
1800년에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貞純王后)에 의하여 호조,형조.공조의 판서와 금위대장(禁衛大將 등 삼영(三營)의 병권(兵權)을 8년 동안 잡았다.
여주에 있는 그의 신도비(神道碑)는 순조가 친히 지은 것이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금석집》 12권이 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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