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80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379

자유게시판

과정록 중에서

페이지 정보

한가람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3:09 조회1,842회 댓글0건

본문

이글은 『과정록』(나의 아버지 박지원)에 수록된 글 로서
과정록이란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며 연암의 둘째 아들 종채의 글이다. 박종채는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 책의 초고를 집필 했다.


선조 야천(冶川;박소) 선생의 묘가 합천군 화양동에 있었는데,
서울에서 너무 멀어 오랫동안 돌보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안의에 부임하셔서 여러 차례 성묘하고 제사를 지냈다.
당시 제실은 이미 허물어지고 제전 마저 없어진 상태였다.
이에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여러 종친들에게 편지를 띄웠으며,
몸소 주관하여 제실을 세우고 제전을 마련 하셨다.
일족(一族)으로서 도내에서 고을 원을 하고 있던 분들 역시 각각 돈을 내어 이 일을 도왔다.
재실과 제전을 산 아래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맡길 경우
제전을 횡령하고 재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등 이전과 같은 폐단이 있을 것 같아
합천군 길청(※ 지방 관아의 아전들이 일을 보던곳)에 소속을 시켜
청명(※ 대개 한식과 겹치나 그 하루 전날이 된다. 이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에 제사 지내게 했다.
아버지는 재실에 걸 기문(記文; ※이기문은 『연암집』권 1에 『합천 화양동 재실의 기문』이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을 친히 지으셨다.

그뒤, 재실에서 제사를 지낼 때 합천군 호장(戶長)이 축문(祝文; ※제사 때 읽어 신명에게 고하는 글. 후손이 읽게 되어 있다) 을 읽었다는 비방이 있었다.
아버지는 족형(族兄)인 근재공(近齋公) 윤원(胤源)에게 답장을 보내 그런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해명 하셨다.
기문(記文)과 편지는 모두 문집에 실려있다(『연암집』권2에 「족형 윤원에게 답하는 편지 (답족형윤원씨서) 가 실려 있다 박윤원이 연암에게 보낸 편짇 함께 실려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