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 박세양(朴世陽) 선조에 대한 연구현황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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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소 연구철학이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처음에 어떤 경위로 김동삼 선생의 처남이 박세양 선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습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1990년초, 만주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시다가 행방불명되신 것으로 알려진 종조부 박의서
(朴義緖)선조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신민부에서 활동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박경순(朴敬淳) 선생 기록을 발견하였습니다.
종조부의 본명은 박의서이지만 자(字)가 박경순이었기에 두분이 동일인물인지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삼을 가지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종조부와 관련된 내용은 며칠전에 올린 칼럼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종조부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김동삼(金東三)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관련 책을 읽다가
부인되시는 분께서 반남박씨의 후손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록의 출처는 " 만주지역 통합운동의 주역 김동삼 "제하의 책 188쪽에 있는 내용인데, 해당 내용을
인용합니다.
[ 1878. 6. 23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서 부친 김계락과 모친 영해신씨의 2남 1녀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남. 본관은 의성. 본명은 김긍식, 이명은 김종식, 자는 한경, 호는 일송.
집안의 가학을 이어 받고 한말 안동의 최고 지도자였던 서산 김흥락으로부터 학문을 배움. 광산 김씨
김노창의 딸과 혼인하여 장녀가 태어남. 첫 부인의 죽음으로 반남박씨 박순부 재혼 ]
이와 같은 기록은 2018년 2월 19일 책을 정독하는 중에 발견한 것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7년전의
일입니다.
이를 근거로 박순부 여사께서 판관공 박병균(朴秉鈞) 선조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남동생이 되시는 박세양(朴世陽) 선조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어 현재에 이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박세양 선조에 대한 행적을 추적하여 대한국민회
관련 자료에 한자끼지 일치하는 인물을 발견했으나 조사한 결과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그동안 전혀 모르던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어 현재 추적중에 있습니다.
갑신보를 비롯해 무술보, 경신보, 임진보에 나와 있는 공통적인 기록은 박세양 선조께서 1887년에
탄생하시어 1922년 향년 36세로 별세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있으니 박세양 선조의 모친과 부인되시는 분이 고성이씨 문중의 후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직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서로군정서의 독판으로서 서간도의 최고지도자였던 아상룡
(李相龍) 선생이 바로 고성이씨 문중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박순부 여사께서 어떤 계기로 김동삼 선생과 혼인하시게 된 것인지 그 내력을 전혀 모릅니다.
또한 박세양 선조의 생애 자체가 베일에 쌓여 있다는 것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며칠전에 판관공 선조의
후손이신 박승혁 대부께서 박세양 선조께서 후손이 없다는 새로운 정보를 알려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세양 선조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다가 36세라는 젊은 연령에 별세한 것인지 그 내력
또한 베일에 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세양 선조의 행적과 관련해 혹시 아시는 내용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올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박세양 선조를 7년만에 다시 연구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추적하였던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해 박세양 선조의 행적을 규명할 수 있도록 혼과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2025년 5월 8일(목) 문 암 올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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