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TV 드라마 <대왕 세종> 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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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1:46 조회1,864회 댓글0건본문
10여 년 전에 KBS 1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용의 눈물』의 시청 율이 대단히 높았고 우리 종원 들도 관심을 갖고 시청한 분들이 많이 있었다.
또 오래 전에 출간된 박종화씨가 쓴 『세종대왕』과 이찬우 지음『훈민정음』이란 소설이 있다.
이 세 가지 연속극과 소설에 공통점이 몇 가지 있는 중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기에 우리가 생각을 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고
또 『대왕 세종』에서도 이 공통점이 나오리라 예상이 된다.
공통점의 특징
첫째 평도공 휘 박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두째 평도공 과 안효공 심온의 이야기가 나오고
셋째 평도공의 이야기는 심온의 사건에서는 부정적으로 나온다.
아마 첫 회부터 평도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심온 사건은 안 나올 수가 없는데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평도공에 대한 이야기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심씨네 문중사람들은 입만 열면 평도공을 헐뜻는데 우리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몇 년전『반남박씨 종보』에 심온의 사건, 해명하는 글을 오창공이 쓴『기제잡기』에 근거로 하여 전 부도유사 정서씨가 써서 발행을 했으나 타 문중과 시비의 우려가 있다고 하여 많은 신문을 폐기하고 종보를 새로 발행한 일도 있다.(잘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너무 소극적인 대처 방법이 아니었나 ?)
그 후에도 몇 사람이(ID명 신과객, 고선지) 심씨 문중의 비난을 반박한 일이 있으나 별로 소득이 없다.
걱정되는 일은 심씨 댁 외에 타 문중에서도 평도공이 잘못했다고 인식을 하고 그것을 사실인 것 같이 받아드리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항상 심씨댁 문중의 근거 없는 비난을 듣고만 있어야 하는지.
『청송심씨 大同譜 首卷 顯祖史蹟』중에서
앞 구절에는 조선왕조 실록과 똑같은 내용으로 기술하고 뒤 부분에 가서는 실록에 없는 부분을 삽입하여 평도공을 비난하고 있다.
태종18년 태상왕이 임금에게 선위 하려고 하였으나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였다.
박은이 <그 뜻을> 짐작하여 알고 심온(沈溫)에게 이르기를,
요사이 임금의 의향을 그대가 아는가.
박은 또 말하기를,
임금의 처사는 잘 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끝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 내선(內禪)한다 할지라도 아무 탈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심온이 박은의 말을 임금에게 알리니, 임금이 심온의 말을 옳게하고,
더욱 심온과 말한 것을 옳게 여기지 아니하여 곧 태상왕에게 계하였다.
태상왕이 선위한 뒤,
임금이 태상왕께 사뢰기를, 박은이 어느 날 심온에게 내선 한다는 일을 말하였으니, 이것으로 보면, 박은 은 순결한 신하가 아닙니다. 하니, 태상왕이 말하기를,
내가 장차 내선 하겠다는 말을 하였고, 박은이 직접 이것을 들은 까닭에 그런 말을 한 것이라 하였다.
심온이 죄를 받게 되자 , 심온이 태상께 계하기를,
심온이 이조 판서가 되었을 때 자기 사람을 많이 등용하였습니다. 태상은 듣고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이 비웃기를, 박은 은 자기 반성은 할 줄 모르고 온의 세력부린 것만 허물 하는가 하였다. 김점金漸이 항상 조정에서 박은을 보면, 반드시 큰 소리로 말하기를, 박은 그대의 등용한 사람은 다 그대의 집에 드나들던 자요, 우리들의 부탁한 사람은 모두 들어주지 아니하니 옳은 일인가,& 하니, 박은이 대답할 말이 없었다.
박은이 비록 친척을 많이 등용하였으나 조정의 명사를 다 뽑아 썼으므로, 남들이 심히 원망하지 아니하였다. 박은 은 취마의 재주가 있고, 임금의 의향을 잘 맞추어 나갔다.
공께서는 이 이야기를 상감에게 아린 바, 상감께서는 박은의 의(義)롭지 못함을 느끼시고 박은이 공에게 한 말을 더욱 미워하여 즉시 상왕에게 상계하기를 박은은 진실하지 못한 신하라고 아뢰었다.
<실록에 없는 날조된 부분>
박은이 이 말을 듣고 공을 원망한 나머지 급기야 공에게 사사의 화를 입게 하고 박은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을 모함하는데 갖은 힘을 다 하였다고 한다.
공께서는 임종하심에 가인(家人)에게 경계유언 하시기를
『나의 자손은 대대로 박씨와 더불어 혼인하지 말라. 하였다.
우리 종원중에도 이상하게 평도공이 심온 사건에 관계되는 것같이 말하는 분이 더러 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좋을 텐데 조금 잘못된 지식이 문제다)
우리 자손들조차도 정확한 심온의 사건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심씨네 문중에서 무엇이라고 해도 반론을 제대로 못한다.
심씨네 문중 종원중에도 조선조 태종때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네 주장이 무리하게 평도공을 폄하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오히려 우리가 심온의 사건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의 말이 있다.
평도공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심온의 사건전말, 태종의 국가 경영 방침을 알아야 심온의 사건을 올바르게 알고 평도공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해소 될 것으로 믿는다.
지금이라고 늦지 않았다
평도공에 대한 업적을 역사학자에게 연구를 의뢰해서 심온의 사건뿐만 아니라 숨겨져 있는 평도공의 업적을 발굴해야 된다.
평도공의 업적에 많이 있으나
우리는 잘 모르고 우리 종중의 역사에 대하여 많이 아시는 분들께 여쭈어 보아도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부분이 없다.
강원도 관찰사로 계실 때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공자가어』를 『신간표제공자가어 구해』라고 하여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을 출간하고
죄인의 형벌을 가할 때 기준 없이 처벌하던 일을, 기준을 만들어 형벌의 양을 정하여 백성들의 피해를 줄여주고
전라도 관찰사로 계실 때 중국에서 온 황엄 이라는 중국사절을 예로 대접하여 백성의 피해을 줄이고 후에 황엄 이라는 사절이 왕에게 고하여 "전하의 충신은 오직 박은 뿐이라" 하는 말과 같이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음을 나타낸다.
하륜 이라는 좌정승이 태종의 측근임의 빙자하여 권력을 휘 들렀으나 그의 옳지 않은 일에는 굽히지 않고 업무를 수행했고
평도공의 가장 훌륭한 업적 중에는 기존에 부실하게 존재하던 집현전을 세종에게 강력히 건의해서, 기관을 확대하여 실제의 연구 기관으로 개편하였다. 기관을 통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고 많은 업적을 세워 세종대왕의 통치 기간 중에 한국 문화사상 황금기를 이룩해 놓았다.
위의 열거한 예 외에도 많은 일을 하셨고 일화도 많으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일이 너무나 많다. 평도공에 대한 연구가 너무 빈약하다.
조선왕조실록에 평도공 박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1271건에 비해
심온 선생에 대한 기록은 388건으로 빈약하고
그것도 심온 사건에 대한 기록이 다수로서
역사에 공헌한일이 평도공은 심온 선생에 대하여 월등한 반면에 역사적인 평가는 심온 선생 보다 별로 높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조만간 『대왕 세종』에서 심온의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가 전개될텐데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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