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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질문 | 전자세보 심의 결과 회신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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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범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9-13 13:15 조회1,144회 댓글2건

본문

대종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지난 7월 30일자 공지사항에 올라온 글을 인용합니다.

 

"금번에 등록이 안 되신 종친께서는 근거를 확인하는 절차 또는 의심되는 부분이 있어 좀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보류되었으므로 양해 요망합니다."

 

비록 별보라고 하더라도 연접이나 환부역조 등을 방지하기 위해

대종중에서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뜻은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근거가 더 필요한지, 아니면 어느 부분이 의심스러운지

대상자에게는 최소한 통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증빙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추가하던지, 아니면 등재가 되지 않은 사유를 납득하던지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떼쓰듯이 등재를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6대에 걸친 호적과 수단을 정당한 절차를 거쳐 대종중에 보냈는데

종사유사께서는 연락도 되지 않으시고 그저 보류하겠다는 공지 하나로 갈음하시는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답변을 촉구합니다.

댓글목록

대종중관리자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대종중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범진님께서 전자세보에 신규등재를 석원(錫源 -처음 등재 요청서에 현재는 석태로 정정하셨음)이하 37명을 요청하셨습니다.
석태(錫台)님으로부터 아드님 종한(宗漢) -부터 순동(順東)- 제석(齊石)-운지(雲之)-승희(勝熙)-범진(範珍)을 기본으로.

저렇게 6대에 걸쳐 종한님께서 1848년생 이시니까 1800년 초부터 자료를 가지고 충청남도에 공주군에서 사셨는데  1824년 제4차세보 을유보에서 1958년 제6차세보 무술보까지 등재 신청을 안 하셨다는 점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또한 1981년 제7차세보 경신보 제작 당시에는 서울 동대문에 살고 계신분도 계셨는데 말입니다.

2022년 전자세보 업데이트시에는 반남박씨로 인정을 해야하는지 조차도 의문이였고 따라서 검토 자료에서 제외시켰습니다.

2023년도에 재차 접수하신 자료도 범진님 이후 등재신청 한 분들은 증빙자료도 없어 자료도 미비했지만 별보에 삽입을 의논하였으나. 별보에도 수록을 하려면 근거가 될 수 있는 기록을 적어야 하는데 당장에는 어느파 후손인지도 알 수가 없고 충남 공주면 산골도 아니고 주변 인척이나 일가나 일가의 족보에라도 기록을 더 찾아보고 좀 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되었기에  보류가 되었습니다.

주민등록에 본관이 반남이라고 되어 있어도 세보에 등재되지 못한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안타깝지요 그렇다고 다 별보에 올려 드릴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입증 자료라도 있어야 하고 그 입증은 대종중에서 해 드릴수는 없습니다.

충남 공주에 반남박씨분들 많이 계십니다. 적어도 조부님 사셨던 곳에 가셔서 좀 더 발 품을 팔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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