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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와 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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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우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1:33 조회1,8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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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道袍) 와 유건(儒巾)

1,도포

도포의 유래는 관복인 직령공복(直領公服)을 본떠서 만들었다 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즉 고구려의 포(袍)가 고려의 백저포(白苧袍)가 되었으며 조선의 직령포(直領袍)로 변했다가 도포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조실록,효종실록,등에는 도포제도(道袍制度)는 임진왜란(壬辰倭亂)후부터라 하였으며 정조(正祖) 때에는 관리들과 일반 선비들의 평상 겉옷으로 뿐만 아니라 유생(儒生)들의 공복(公服)이나 제복 (祭服)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의하면 직령(무관이 입든 옷)에서 나왔고 조사(朝士)사인(士人)의 옷이다 임진왜란 후에 생겨나 유행 했으며 색깔은 백색,옥색이고 재료는 모시나 면을 사용 하였고 형태는 직령과 같으나 뒷길을 허리위에서 부터 트고 허리에 전삼(展衫)을 덧붙여 직령과 차이가 있다

전삼을 부착 한것은 말을 탈 경우 하의(下衣)가 보이는 것을 감추기 위한것이 엇다고 하나 형식에 불과 하다

[남당초고](南唐草稿)에 보면 선비는 평상복으로 출입할수 없으므로 직령에 따라 그 제도를 조금 변경하여 만들었는데 앞은 직령과 같고 뒤는 직령의 삼엽삼을 첨부한것이 다르다 왕자나 대군만이 입었으나 임진왜란후에 선비들이 입기 시작 하였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 하층민의 도포착용을 금하였으나 막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도포는 남성들의 대표적인 포(袍)이며 도포를 입을때는 갓을 쓰고 대를 둘렸으며 가죽신을 신었다는 기록이 있다

도포의 깃,섶,고름,은 요즈음 두루마기와 같은 형태인데 소매품이 아주 넓고 또한 길이가 길다 그리고 옷의 뒷자락은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뒤 중심이 터저있고 그 위에 전삼(展衫)이한겹 더 붙어 있어서 터진 곳을 가려준다 이것이 도포의 특색이며 앉을때 전삼을 들고 앉아 뒷자락이 구겨지는 것을 방지 하였다

허리에는 세조대(細條帶)를 매었는데 당상관(堂上官)은 자색(紫色),당하관(堂下官)은 청색(靑色)을 사용하게 하였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고 도포의 색상또한 옥색(玉色)외에 다양한 색을 자유롭게 사용 하였다 도포에 따르는 관모(冠帽)는 외출시에 일반적으로 흑립(黑笠,갓)을 착용 하였으나 사방관(四方冠)또는 유건(儒巾)도 많이 사용 하였다 그리고 신발은 사대부(士大夫)는 태사해(太史鞋)를 주로 신었고 유생들은 흑혜(黑鞋),운혜(雲鞋),마혜(麻鞋) 등을 신었다

도포는 조선조 말기인 1895년(고종,32년4월,일, 관리복제 공포) 의복제도(衣服制度) 변경때 다른 소매가 넓은 의복 등과 함께 폐지(廢止)하도록 하였으나 오히려 관직(官職)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 예복(禮服)으로 즐겨 사용한 이후에 지금도 여전히 유림(儒林)들의 예복과 제복(祭服)으로 사용 되고 있다,


2, 유건 (儒巾)

조선시대 유생(儒生)들이 주로 썼든 건으로서 흑색(黑色)의 베,모시등으로 만든다 두건(頭巾)의 형태와 비슷하나 양측으로 귀가 나와 있고 끈을 달아서 갓끈 처럼 매기도 한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진사(進士)가 흑단령(黑團領)에 유건을 착용 했다는 기록이 보이며 [성호사설](星湖사說)에는 민자(民字)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세속에서 민자건(民字巾)으로 불러지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도포에 갖추어서 쓴다

[추계선생문집](楸溪先生文集)에 관학유생의관(館學儒生의冠)이 근본적으로 정제(定制) 된것이 없어 추계선생이 전사후민(前士後民)의 의(義)로 유건의 제도를 만들어 관유(館儒)로부터 각 지방향교 유생까지 사용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추계선생,본관,파평,휘,孝孫,시호,文孝,시조太師公14세손)

                        성균관,전인,전례사

                             숙천공 후     원우(동일) 조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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