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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특별 | ※ 반세기 만에 올바르게 모시는 時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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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允中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0-15 00:00 조회1,751회 댓글0건

본문

 

어제(23.10.1311) 대종중 종무소에서 전자세보 심사위원회종사전례 자문위원회의 연석회의가 있었습니다.

연석회의는 滿春 종사전례 자문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正經 도유사, 勝元 洋雨 부도유사, 和春 상임유사회 의장까지 참석하셨습니다.

 

이날 연석회의의 주된 안건은 貞敬夫人이신 문강공 배위 남양홍씨時祭 祝文에 반세기 동안 贈 貞敬夫人으로 기록했던 것을 貞敬夫人으로 訂正하는 것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족보와 비석에 정경부인으로 기록된 문강공 배위 남양홍씨, 졸헌공 배위 선산임씨, 서포공 배위 전주이씨세 분의 대종중 봉사위에 대해 반세기 동안 時祭 祝文紙榜을 잘못 기록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금년부터 생전에 불리던대로 訂正하여 時祭를 모시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남양홍씨 할머니께서는 합천에서 41살에 과부가 되셨으나, 어린 아들들을 이끌고 한양으로 이주하시어, 단계적으로 세 명의 스승을 바꿔가며 자식 교육에 熱誠을 다하셨는데, 다섯 아들 모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남일공 應男 졸헌공 應福 두 분이 문과 합격하였습니다.

한편, 인순대비(인순왕후)의 동생 沈義謙과 친분이 있던 셋째 아들 남일공 應男의 추천으로 둘째 아들 應順의 딸이 1569년에 선조대왕의 正妃인 의인왕후가 되어, 둘째 아들 應順영돈녕부사 반성부원군이 되었고, 어머니 남양홍씨는 貞敬夫人이 되셨으며, 전성열정의 봉양을 받으시고 1578년에 향년85세로 돌아가셨습니다.

 

홍씨 할머니는 남편 때문에 정경부인에 오른 것이 아니고, 맹모삼천지교에 비교되는 자식교육으로 자식들이 잘된 덕분인 것이며, 족보에도 정경부인 남양홍씨로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 경신보 발간 시 처음 발행된 세적편에 판관공파 소고공 承任께서 지으신 유명조선국 정경부인 홍씨 묘갈명을 등재하면서, 난데없이 정경부인증정경부인으로 바꿔 놓았는데, 아마도 이때부터 시제 축문을 증정경부인으로 바꿔놓은 것이 아닌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듭니다.

  

남편이 贈職될 때, 살아있는 부인은 ○○夫人교지를 받으므로 돌아가신 뒤에 받는 ○○夫人과는 구별되는 것이며, 남편의 實職으로 부인의 품계가 오르는 경우에도 살아있는 경우 ○○夫人’, 먼저 죽은 경우 ○○夫人으로 구분되는 것입니다.

소고집원본.png

 

문강공 축문.png

 ( 위 축문은 회의자료인데, 아래 5째줄 編修館은 編修官으로, 아래 3째줄 끝부분의 淸掃封塋은 瞻掃封塋으로 교쳐야 맞다) 

 

결론은 작년 9월 임진보 세적편의 유명 조선국 정경부인 홍씨 묘갈명자는 잘못 기록되었음을 지적한 이후로 13개월 동안 여러 분들의 반대 의견에 논박하기 위하여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구 족보와 敎旨의 작성 형식에 대한 공부가 되었고, ‘정경부인 홍씨 묘갈명제목을 소고 선생께서 잘못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반성부원군의 묘지명을 율곡 선생께서 기록할 때, 홍씨 할머니에 대해 誤記하였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후손된 입장에서 가장 기쁜 것은 올해부터 대종중 봉사위 세분 할머니들을 올바르게 부르는 時祭를 모실 수 있다는 것이고, 부수적으로 남곽공 배위 정부인 고령신씨紙榜祝文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나헌공 潢의 후손인 본인에게 피를 나눠주신 남양홍씨, 선산임씨, 고령신씨 세분 할머니들의 호칭을 올바로 訂正하게 되었으니, 할머니들께서 기특해 하실 것을 생각하면 즐거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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