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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절대(絶對)와 상대(相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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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더브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3-26 22:11 조회9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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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대로

남에게 억울함을 주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 또는 ‘이중잣대’이다.

聖賢(성현)들은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에게는 엄격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 대다수 평범한 인간은 성현만큼 거룩하지도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하여 억울함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억울함이란 不當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부당’이란 말 그대로 “당연하지

않다”의 뜻이니 어떤 일의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뜻이 된다.

  ‘내로남불’이나 ‘이중잣대’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비판적인 안목을 길러야 한다.

비판적인 안목이란 어떤 두 사람이나 두 개의 사물을 비교할 때 상대적인 그

장점과 단점을 비교 평가하는 데서 길러진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절대

선이고 절대 악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교통사고 등에

관한 재판에서 피해자에게도 어떤 형태의 과실이 있는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

가 각기 몇 퍼센트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는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물론 여기에도 모순은 있을 수 있다. 유명한 황희 정승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두 계집종의 다툼을 보고 황희가 물었다.

 이쪽의 얘기를 듣고는 “네 말이 옳다”고 하고 저쪽 얘기 듣고는 “네 말도 옳다”

고 하자 이 말을 들은 황희의 부인이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는 뜻으로 따지자(?) “부인의 말도 맞소” 하였다. 얼핏 보기에는

모순이나 누구의 말이라도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라는 뜻이 들어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그 장단점과 선악을 비교한 연후에 판단해야 하므로 당장은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도 없고 또한 옳다고 판단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예전에 포항의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대구 경북의 명문 경북고등

학교를 거쳐 서울 법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영어 선생님이 계셨는데 피고나

원고가 되어 법정에 가면 법관이나 변호사의 심문에 “예스 노”로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름의 타당성이 있겠지만 이것은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있다는 말이므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데 있어 엄청난 방해가 된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간단 명료화’하는 장점은 있지만 ‘단순 무식’하게 만드는 단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먹어야 산다”는 먹을 것이 많지 않고 먹을 것을 찾다가 맹수에게

희생이 되기 쉬운 원시시대의 인간이나 혼자서는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리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을 가르는 단순 무식의 흑백

논리가 성행하고 있고 상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회색분자’로 무슨

죄인 다루듯 한다.

  어려운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 한국인이 갖는 단순한 세계관(世界觀)이라고

할까, 선악관(善惡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할 두 가지를 논하고자

한다.

하나는 불편한 얘기지만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사고방식이다.

양국 관계에 있어 한국은 절대 선이요 일본은 절대 악이다. 예전에 KBS나

MBC가 프로그램 개편을 하는 경우엔 담당자들이 꼭 부산에 내려가서 일본

방송 프로그램을 검토하였다고 한다. 일본과 일본인은 악한데 그 물건은

선하다? 과연 있을 수 있는 말인가?

 어떤 물건은 소비자에 대한 생산자의 정성에 달려있다고 흔히 말한다.

그렇다면 악한 자의 손에서 선한 물건이 나올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역사적으로 왜구, 임진왜란, 강제적 한일합방에 의한 일제 강점기 등

일본과 일본인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이것은

보편적이다. 강자들은 항상 약자를 괴롭혔으며 수탈했다. 오죽하면 정의(正義)

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서양의 강국-미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은 모두 일본과 같은 절대 악이다. 그렇다면 식민 제국주의의 원흉 영국

은 우리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 중의 악이다. 3백년 동안 영국의 가혹한

지배를 받은 인도인은 2차대전 때 영국과 싸웠다는 것이 주 이유가 되어 일본

과 일본인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단순 논리라면 “서양과 서양인은 모두 악

인데 그들의 물건은 좋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이 된다. 일본에게 괴롭힘이나

합방을 당한 것이 일본의 악랄함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단순 무식한 사고

방식 “먹어야 산다”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역으로 우리의

힘이나 방비가 약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가?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며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하면

되지 않겠는가? 일본을 욕하게 되면 욕하는 만큼 정력이 낭비될 수도 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말하면서 또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어찌

일본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이 단순해야만 하는가? 보다 더 냉정하게 생각해야

더욱 큰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일본보다 비교 우위를

점할 날이 올 때 우리가 일본이 우리에게 한 악랄한 짓을 하지 않고 선의로

대한다면 우리가 일본이나 일본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성숙한 ’사람다운‘

나라와 민족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짧은 시기에 발전을 이루어 “먹어야 산다”

의 단순 무식한 동물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물론 우리 민족의 우수함에 큰 이유가 있지만 가까운 거리에 불편하고 밉지만

잘 나가는 ’가깝고도 먼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음을 인정하자.

 일본을 절대 악이라고 보는 논리는 우리 한국인에게는 통할 수 있으나

전 세계인을 상대할 때는 허점이 많게 보일 가능성이 더 크며 결국

우리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세계 여행을 하는 것이다.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말이다.

다음은 잡지 “세계지도 기네스 기록 탐험”의 나일강과 비교하여 아마존강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아마존강은 콜롬비아와 페루에 있는 안데스 고원에서 발원해 대서양으로 빠져

나간다. 아마존강은 상류 하류 할 것 없이 지류가 굉장히 복잡한 것으로 유명하다.

강의 폭은 압도적으로 넓다. 폭이 가장 넓은 지점은 건기에는 11km 정도지만,

우기에는 무려 40km까지도 커진다. 특히 아마존 하구(河口)는 엄청나게

커서 전체 폭이 325km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이쯤 되면 강이라기보다는 바다로 느껴질 것

이다. 실제로 바닷물이 수십 킬로미터나 역류하여 드나들기도 하는데, 바다와

강의 경계가 거의 희미해진 곳으로 볼 수 있다

강의 하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 폭이 325km, 구체적으로 서울에서 대구의

거리란다.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가서 직접 보면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가 되어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벌어 세계 여행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학창 시절에 하나의 필수 교과 과정으로 다닐 만한 곳을 골라 학생들이 보다

넓은 안목을 기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물론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 있을 수도 있고 실제 그런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관점에서 간단 또는 단순하게 접근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어떤 문제에 접근한다면 우리의 사고방식이 훨씬 유연하고 우리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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