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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반남 박씨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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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더브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3-11 22:39 조회1,108회 댓글0건

본문

 

어릴 때 강원도 원주시에 살았다.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247번지 중앙유리점이 아버지가 하시던 유리 가게

이름이었다.

그리고 도로 건너편 맞은 쪽에는 원주와 강원도 영서 남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던 최약방(한약방)이 있었는데 그 집 아들은 나의 친구이기도 했다.

최약방은 최약국이라고도 했는데 당시로는 제법 큰 건물이었고 마당도 넓었다.

최약국에는 종업원들도 제법 많았다. 네 살 때 기억이다. 최약방의 살림방

같은 곳에 엄마가 나를 데리고 놀러 갔던 모양이다.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하나 분명한 것이 어른들의 등쌀(?)에 내가 부른 노래(?)였다.

“나는 발랑 박가 나는 발랑 박가”

그때 최약방의 간호사로 “꼬박”이라고 불렸던 분이 일어나 부른 노래가

“나는 미련 박가 나는 미련 박가”였다.

그 나이에 그런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그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반남박씨라 하지 않고 발랑 박가라고 했다. 밀양

박씨의 영향으로 발음하기 좋으니까 한편으로는 놀리는 양으로 ‘발랑’이라

고 했을 것이다. 조금 커서도 그런 놀림을 많이 받았다. 밀양 박씨인 ‘꼬박’

도 자칭 ‘미련 박가’라고 했으니 박씨들이 스스로를 조롱한 꼴이다. 나는

이를 박씨 ‘수난시대’ 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뜻하지 않게 반남박씨의 전성시대가 찾아왔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엄마는 6학년 1학기

때 전학시키려 하였지만 나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버티

다가 결국 2학기 때 서울로 전학을 하고 불과 3개월여를 다니고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때가 1965년이다. 중학교 3학년 세계사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물으셨다.

“네덜란드에서 상공업이 쇠퇴한 이유를 아는 사람 손 들어 봐라.”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스페인 왕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칼 5세의 아들 펠리페 2세로서 당시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신성로마제국)가 같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되어 서로 사촌으로 부르던

시기이다. 또한 당시의 중요한 정세는 구교(카틀릭, 천주교)에 대항하여 신교

(현재의 기독교)의 교세가 한창 뻗어나가던 때여써 유럽 전역에서는 신구교도

사이의 전운이 감돌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나는 초등학교(초등학교) 때부터 국사(역사), 지리, 세계사, 세계지리 그리고

일반사회에 해당하는 과목에 심취하여 닥치는 대로(?) 해당 서적을 읽어 답을

알고 있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은 관심이 없었다.

“네덜란드는 신교가 우세한 지역인데 철저한 구교인 스페인에서 열렬한 구교

신자 알바공을 파견하여 신교를 박해한 결과 신교도들은 신교가 우세한 지역

으로 이주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네덜란드의 상공업자들은 대부분 신교도이었다.

선생님이 매우 기뻐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너 같은 애만 있으면 가르칠 맛이

나련만...”

역시 애들은 예나 지금이나 국영수였다. 지금은 초등학교부터의 열풍에 대한

반작용으로 고등학교에서는 영어는 수학이나 국어에 비해 주요 과목 취급을

못 받는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남미를 포함한 지역에서는 구교

인 천주교가 압도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신교가 훨씬 우세

하다. 구교도 지역인 아일랜드인의 후손 미국 존 F 케네디(1917-1963)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1913-1994)과 맞섰을 때

한 방송국의 앵커가 물었다.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가정하고 당신의 종교와

국가의 정책이 충돌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사임할 것이다.”

케네디가 1961년 1월 20일 미국 3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때 쟁점이 된 것은 ‘낙태’였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신교는 비교적

진보적인 반면 천주교는 절대 ‘반대’이기 때문이다.

반남박씨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한국전쟁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 무지막지한

야만적 반민주 체제에서 반남박씨 대종중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미국이 천사이기 때문에 우리를 도운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익에 부합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정을 하든 말든 세상은 절대로 약소국 뜻으로 되지 않는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일본은 재채기를 하고 한국은 심한 몸살을 앓는

다”는 상식을 밥먹듯이 말하면서 미국의 정책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냐고 물으면 이리저리 죽 끓듯이 변덕을 부려 경신, 기사, 갑술의

환국(換局)을 통해 신하들을 못살게 굴었던(?) 조선 19대 임금 숙종이

우리 가문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리 가문이 존경해마지 않는 정재 박태보 선조님이

목숨을 잃었고 수락산 밑의 노강서원과도 당장 관계가 있다.

미국의 정책은 숙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넓이와 깊이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대주의가 아니다. 현실은 현실대로 직시하여야 한다.

어떤 특정 가문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가 송두리째 날라갈 수도 있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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