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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빅토리아 여왕과 유럽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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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더브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2-28 11:52 조회1,056회 댓글0건

본문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원래 왕위계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우여곡절을

겪고 큰아버지인 윌리엄 4세가 후사가 없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녀의 치세(1837-1901) 소위 빅토리아 시대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Great Britain- Country where the sun never sets)의 극성기로 세계 인구

4억이 그녀의 치하에 있었다.

그녀는 또한 64년이라는 세계 최장수의 군주이기도 하다. 참고로 조선 최장수


21대 영조의 치세는 1724년에서 1776년까지 52년이다.

20230228_080833ebb3b5ec82ac2jpg.jpg빅토리아 왕실 1894년 사진이다.

앞줄 왼쪽부터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빅토리아 여왕 독일 황태후 제2열의

두 번째가 후일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와 비, 제3열의 흰 옷이 후일의

영국의 에드워드 7세

 

빅토리아 여왕(1919-1901)은 작년에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의 고조모이다.

현 찰스 3세의5대조모가 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엘리자베스 2세까지는

한식 등 4대 봉사를 받고 찰스 3세부터는 시제에 모셔진다고 할까?

엘리자베스 2세도 “세기의 사랑”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의 이혼한

평민 심프슨(실제 발음은 심슨에 가까움)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함

으로써 그 동생인 그녀의 아버지 조지 6세, 그리고 그녀가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이다.

 

러시아 최후의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황후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다.

또한 덴마크 왕비는 그녀의 외숙모이지 시이모기도 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황후가 된 영국의 공주는 자신이 유전병인 혈우병 (피가 나면 멎지

않는 병)이 있음을 알렸음에도 스페인의 황태자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혼인이 성사되었다고 한다.

 

이렇듯이 다소는 복잡하게 유럽의 왕실은 서로 혼인에 의해서 인척이 되었다.

이전에도 유럽 각국의 왕실 상호간의 인척 관계는 드물지는 않았으나 영국

의 빅토리아 여왕 치세 (1837-1901)에 절정을 이루게 된다.

빅토리아 여왕은 슬하에 자녀 4남 5녀 아홉을 두었다.

 

일일이 소개하면 너무 길어 편의상 장녀(맏이)와 장남(둘째)에 대해서만 소개

한다. 우리로서는 유럽의 왕실이 서로 혼인으로 얽히고 섥혀있음을 알면 된다.

노르웨이, 덴마크, 루마니아, 스페인, 스웨덴,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 근세에

존재했던 많은 유럽의 왕실이 빅토리아 여왕과 관계가 있고 특히 현존하고

있는 유럽의 왕실은 대부분이 그녀의 후손들이다.

 

● 장녀 프린세스 로얄 빅토리아

배우자 : 프리드리히 3세

슬하 4남 4녀

독일의 황후

장남 :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3녀 : 그리스 왕비 소피아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

외손자 :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2세, 알렉산드로스, 파블로스

외손녀 : 루마니아 왕비 엘레니 (카롤 2세의 왕비)

● 장남 영국의 에드워드 7세 국왕

배우자 : 덴마크의 알렉산드라[4]

슬하 3남 3녀

2남 : 영국 국왕 조지 5세

증손녀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3녀 : 노르웨이 왕비 메우드 (호콘 7세의 왕비)

외손자 : 노르웨이 국왕 울라프 5세

● 차녀 앨리스 공주배우자 : 루트비히 4세 폰 헤센 대공

슬하 2남 5녀

장녀 : 빅토리아 공녀

외증손자 : 애든버러 공작 필립

사위 : 바텐베르크 공자 루이스

4녀 : 러시아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사위 :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인지 모르다가도 알 일인지 모르지만 인척 관계에

있는 유럽 제국, 특히 영국과 독일,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영국과 러시아가

세계 각처에서 치열하게 대립하고 싸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관계 있는

노일전쟁(1904-1905)에서 영국은 일본을 편들었으며 러시아가 막대한 피해

를 무릅쓰고 동부전선에서 독일을 막은 결과 서부 전선에서 영국 프랑스가

-물론 미국의 참전이 결정적이었지만- 1차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노일전쟁과 1차대전의 여파로 종말을

고하게 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도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1887년에 영국 해군이

일시 거문도를 점령하고 이를 해밀턴 항이라고 불렀다. 이란에서도 대립

했는데 영국의 부의 핵심 원천인 인도를 방어하기 위한 영국의 전략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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