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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유묵( (家藏遺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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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1:15 조회1,8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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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 가장유목.hwp



가장유묵家藏遺墨) 17세기(), 1첩, 지본묵서紙本墨書, 37×44.5

박동선朴東善·박세견朴世堅·박태상朴泰尙·박태유朴泰維·박태보朴泰輔·박태한朴泰翰·박필손朴弼遜 등 반남박씨 서계일문西溪一門의 유묵첩遺墨帖. 성첩자와 성첩 시기는 미상이나 영조·정조연간 박태한朴泰翰의 자손이 성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동선은 서계의 조부이고,
박세견은 서계의 중형이며,
박태유·태보·태한은 서계의 아들이다. 수록된 유묵은 시고·간찰·정문·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간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西溪의 유묵은 이미 별도의 첩으로 제작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된 것 같지만 박정朴炡의 유묵이 수록되지 않아 아쉽다.
현재 서계종택 또는 서계후손가 소장 유묵류의 시기적 상한은 서계 대代인데, 여기에는 서계의 조부 박동선朴東善의 간찰이 포함되어 있어 가장문헌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수록된 많은 글씨 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글씨는 역시 박태보의 간찰이다. 둘 다 아버지 서계에게 올린 이 간찰은 비록 서간문이기는 하지만 당대 명필의 필치를 감상할 수 있는 명품이며, 지면의 활용 또한 매우 돋보인다. 박태한 간찰의 상당수는 조카 박필기에게 보낸 것인데, 당시 박필기는 금산군수錦山郡守에 재직 중이었다. 서계가문은 1686년 박태유가 사망하고, 1689년 박태보마저 정쟁에 희생되면서 수난이 가중되었고, 1703년 서계마저 타계함으로써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일가一家의 가사家事를 주관한 인물이 바로 막내아들 박태한과 손자 박필기였다.
박태한의 편지가 숙질간에 가사를 논의하는 내용을 중심을 이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맨 마지막에 수록된 박필손의 유묵은 1720년 12월 15일 백모 해주정씨의 소상시 제문祭文이다. 해주정씨는 박태유朴泰維의 후취부인後娶夫人으로 슬하에 필기弼基·필모弼謨 두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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