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우물 좌의정 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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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우물
조선시대 柏洞 에 있었던 큰 우물이라 하여 백동우물 이라 불린다 .
백동이란 지명은 조선 태조 때 좌의정이며 공신이었던 朴訔(박은1370~1422)이 자신의 옛집에 백림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겼다 하여 이지역 일대를 “잣나무골 ” 또는 백동이라는 이름이 유래되 있었다 .
수도가 생활화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었던 대표적인 큰 우물로 지금은 우물터가 덮여 있어 우물의 형태와 규모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 물맛이 좋고 수량도 풍부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飮用 하였던 都城 내에 잘 알려진 대표적인 우물이다
※ (2016년) 위의 사적지는 세양공 후 찬유님이 찾아내 종중에 알려와 박제훈 도유사외 여럿이 방문하여 확인을 하였고
올해 2020년 1월 말 종로구청에서 우물터를 복원함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우물로서, 이곳의 옛 지명인 백동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 우물이 크고 깊어서 아무리 가물어도 줄지 않으므로 큰우물이라 하였고 , 우물 옆에 연당 (蓮堂)이 있어 연당우물이라고도 하였다 .
※ 찾아가는길
혜화역 1 번출구에서 우측, 낙산 오르는 길로 오르다가 일석 (이희승)기념관옆 고목나무 아래 백동우물이 있음
참고 일석기념관
댓글목록
chanseo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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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종산 님 ,
아, 그렇군요. 사실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바뀌니 앞 사람들의 일을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오타하신 연대를 수정하셨군요(아래). 확인하였습니다.
종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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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다시 올립니다.
제가2012년에 성균관에 전례사로 같을때도 백동우물이 있다고 했고 그곳이 박은이 살던곳이라고 하여 2013년 도에 그곳에 같을때에는 낡은집 담엽에 있었고 구청에서 새운 간판이 서있었다. 환경이 아주 안좋았는데 요즘은 깔끔하게 주위를 잘정리해 놓은 상태이고. 당시에 대종중에 알리니 종로구혜화동에 우물이 있다고 몇분이 말씀하셨고.. 성균관에서 어윤경관장하고 사석에서도 박은의 집터가있고 거기에 백동 우물터가 있다고 한것이 약6년전의 이이다.
그래서 2016년에 발견은 잘못된것 같습니다 . 하여 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