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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합천 문강공 묘역과 진조당 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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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한가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2-12 23:18 조회2,256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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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합천에서 5년 만에 돌아가셨는데, 아들 딸들이 어려서 울음 소리가 방에 가득하였으며, 큰아버지가 겨우 스무살이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 진주(晉州)에 사는 생원 이광(李光)과 절친한 사이였다. 작고하신 것을 알리자 미투리 신에 대지팡이를 짚고 20리 밖에서 산꼭대기를 넘어 찾아 왔었는데, 할아버지 댁 뒷산에 이르자 큰 소리로 큰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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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지낼 만한 곳을 얻었노라. 너의 아버지가 어질면서도 장수 못한 것을 슬퍼하여 자손을 위하여 좋은 땅을 찾으려고 하였더니 이제 과연 찾았구나.”

하고, 이내 내려 와서 통곡하고 갔는데, 지금의 무덤이 즉 그가 정해 준 곳으로서 뒤에 보는 사람마다 모두 매우 좋다고 하여 동래(東萊) 정씨(鄭氏)의 산소에 다음 간다고 하였다.

 


<기제잡기 중에서>

 

사진을 크릭하시면 크게 사진을 보실수 있으며

작은 사진에서는 첫 줄이 보이지 않으나 큰 사진에서는 보임


우리에게 전 해 오는 여러 자료에는 생원 진조당 이광 선생께서는 성주에 거주 하신 것으로 되어있고

관찬인 사마방목에도 거주지가 성주로 되어 있는데

오창공께서 쓰신 기제잡기에는 진주로 되어 있다.

그러기에 만춘씨는 진조당 이광 선생의 거주지로 진주를 주장하시기에

진조당 가문에 보관하고 있는

야천공 후손이 진조당 후손에게 보낸 서찰 ? 중에

기제잡기에 쓰여진 내용과 같은 서찰(문서?)이 있기에 이를 공개한다.


 

서찰중에 할아버지를 王父로 쓰셨고

기제잡기에도 할아버지를 王父로 쓰신 기록이

세적편 야천공 유사 원문에 왕부로 쓰여 있으며

금양위 미 할아버지는 야천공을 曾王父로 쓰셨다.

 


일반적으로 비문 행장등에는 할아버지를 통상적으로 조()로 쓰는데

오창공께서는 특이하게 王父로 기록하셨다
 
또 진조당 이광선생의 묘도 성주에 있는것으로 몇몇 종원이 참배를 한 일이 있다.
 
서찰?을 쓰신 분이 오창공이 아닌지?



오창공의 기제잡기를 편찬하기위해 자료를 정리하던 후손이 성주를 진주로 잘못 기제한 것이 아닌지 ?

연구를 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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