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면 고다기리(고덕동)는 평도공의 賜牌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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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면 고다기리(고덕동)는 평도공의 賜牌地다 ?
몇 년 전 종중 교양강좌에 평도공의 사위 어효첨선생이 평동공의 사위가 된 내력과 어효첨 선생의 일대기에 대하여 함종어씨 문정공 종친회 회장, 성균관 부원장이신 어윤경 선생이 강의를 한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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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첨 선생의 강의를 준비하기 위하여 함종어씨의 족보 사본을 구하여 조사 중에 구천면(龜川面)이 어효첨 선생의 호(號) 구천(龜川)과 동일하다는 것이 발견되고 또 어효첨 선생과 부친 어변갑 선생 묘가 그곳에 있기에
구천면 고다기리가 본래 어씨댁 소유의 땅으로 연산군 2년 평도공 묘를 중랑포에서 천장할 때 참판공이 모셔져 있는 사패지인 문산으로 가지 않은 것은 문산은 멀기에 평도공의 외손자 어세겸이 모셔간 것으로 추측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야천 할아버지 문강공 혼인 관계를 조사하기 위하여 파평윤씨댁 족보를 찾아 보니
평도공의 큰 사위 윤구(尹救)의 묘가 고다기리에 소재하였음을 발견하였고
원평공(原平公) 윤구의 자손
윤직 원평공파 회장 에게 확인 결과 고덕동(고다기리)에서 이장하였음을 확인 했고,
또 병술보에 기록된 분산도에 평도공 묘역 옆에 윤산(尹山)의 기록이 있다. 尹山이란 윤씨네 산이란 뜻이다.
평도공 묘역 옆에 金山은 평도공의 둘째사위 언양金 潤의 산으로 추측되지만 확인은 못 했다.
평도공의 사녀(四女)와 어효첨선생의 혼인 시기는 대강 평도공의 말년으로 볼 수 있으며
함종어씨 족보에 의하면 어효첨선생은 1405년생, 배우자 반남박씨 할머니는
1492년 86세에 돌아가셨으니, 1407년 생으로 기록 되어있다.
평도공의 말년 1420~1422년경 이면 어선생은 16~18 박씨할머니는 14~16으로 당시의 결혼 적령기이다.
평도공께서 1422년 돌아가신후 분정을 했다고 보면 분정 받은 땅에
1435년 돌아가신 어선생의 부친 어변갑 선생의 묘를 고덕동에 장지를 쓸 수 있고
큰 사위 원평공 윤구선생께서도 장지로 쓸수 있다고 본다.
윤씨댁 족보에 의하면 원평공의 아들 손자 증손자 모두가 이곳에 모셔져 있었다.
두 댁에 분정하고 남은 땅에 평도공을 모신것이라고 한다면
고덕동의 토지는 원래 평도공께서 사패지로 받고 어씨댁과 윤씨댁에 분정한 땅이 아닌가 추측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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