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215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414

자유게시판

답변 | Re..아아! 시대정신

페이지 정보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8-27 13:55 조회2,103회 댓글0건

본문

2013년 반남박씨 근현대지명인사 연구를 인물 5,673명을 122쪽 자리 책으로 먼저 만들고 역사를 통해본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을 만들어갔다. 승혁교수님은 그 책 20, 승서도유사변협회장님은 33, 41쪽에 있다.
 
[논]: 특정한 개인의 등재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드렸는데 아직도 이것을 계속 거론하시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소재(휘 힐)공은 문과급제. 평도공과 도소재공의 나이 차이는 기록상으로 보면 20년 차이가 난다.
 
[논]: 저자께서는 역사서를 저술하면서 1차 원(原)자료를 도외시하고 20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간접 자료에만 의존하신 것 같습니다. "도소재공"이 문과에 급제했다는 기록은 고려 등과록에도 없고 조선 문과방목에도 없습니다.
   역사서를 저술하면서 족보와 같은 사찬(私纂) 자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물론 족보의 기록이라고 무조건 불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역사서를 저술할 때에는, 족보를 참고할 경우 20세기에 나온 족보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간행된 족보도 함께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반남박씨는 1642년 처음으로 족보(임오보)를 발간한 이래 2012년 임진보에 이르기까지 총 8차에 걸쳐 족보(세보)를 간행하였습니다. 이 세보들을 통시적(通時的)으로 비교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심나는 부분은 언제나 근거가 분명한 복수(複數)의 자료를 비교분석하여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모든 연구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간행된 세보(족보)에 의하면, "도소재공"은 1390년(고려 공양왕 경오년) 출생이므로 평도공(1370년생)보다 20년 뒤에 태어나신 것은 당연한 계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종인께서 "도소재공"을 평도공의 형이라고 주장하신 것은 어처구니없는 망발이 아니겠습니까?
 
 
태종 이방원은 도소재공을 찾아와서 벼슬길에 나가자고 권한다. 이때 평도공이 태종과 동행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려가 망한 해에 찾아 왔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두 할아버님은 만나셨을 것이다.
 
[논]: 태종 이방원은 <1367생~1422졸>, 평도공은 <1370생~1422졸>이고, "도소재공"은 <1390생~1429졸>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태종과 "도소재공"은 23년 차이, 평도공과 "도소재공"은 20년 차이입니다. 그리고 평도공의 아버님이신 문정공(휘 尙衷)께서 장류 도중 청교역 부근에서 세상을 떠나신 해가 1375년입니다. "도소재공"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1392년에 겨우 만2세(두살)에 불과하셨습니다.
   저자께서는 상상력으로 역사를 쓰지 마시고, 위의 기록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논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시면 어떤 상황에 도달하는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저자께서 사실로 인정하신 것으로 보이는 p.109, 그리고 p.135의 글을 다시 한 번 더 세밀히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도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도소재공"과 관련된 문제도 역시 하나의 단편적인 예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문제 하나 고친다고 <시대정신>의 모든 문제가 고쳐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문제를 좀 더 큰 틀에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승혁교수님은 처음부터 올렸는데 파일이 여러번 날라버렸다. 독수리타법으로 컴퓨터를 치다보니 뭐가 뭔지 잘 몰라 저장을 누른다는 게 잘못 눌러지고 하여 애를 먹었다. 출간된 후에야 승혁교수님이 누락 된 것을 발견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미리 누구에게도 내가 책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따로 약속한 분은 없다. 그러나 작년 호장공시제때 부친의 존함을 여쭙기도 했는데 끝내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승서변호사회장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논]: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시대정신>과 관련된 논란이 마치 특정 개인이 책 속에 기록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문제의 초점을 흐리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왜 제 이름이 자꾸 회자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당혹스럽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박승혁이란 개인이 자신의 이름이 <시대정신>에 오르지 못하여 저자에게 앙심을 품고 그 책을 비판하는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실 목적이 아니라면, 지금 즉시 박승혁이라는 이름을 특정하여 거론하신 이유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책은 520권을 찍었고 여분은 지금 없다. 이번 일을 통해서 다른 문중에서도 문중사가 아직 나오지 못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논]: 이미 말씀드렸듯이, 840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저작하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더구나 그것을 비매품으로 간행ㆍ배포하려면 상당한 재정적 희생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정신>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줄 "해결사" 역할을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박명서 교수님께서는 문중사가 아직 나오지 못한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알 수 없으나, 제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이유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을 논할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되므로 언급을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시대정신>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결코 특정한 개인의 등재 여부가 아니라, 그 내용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 왜곡의 위험성과 자료 사용에 대해 제기되는 여러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지적해 둡니다.
 
[논]자: 박승혁 謹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