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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의견 | 호장공의 생년(生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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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7-12 10:49 조회2,178회 댓글1건

본문

최근에 출간된 『역사를 통해 본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이하 <시대정신>)에 호장공(휘 應珠)의 생년과 관련한 세 가지 "설(說)"을 소개하고 있다. <시대정신> 77쪽 각주(脚註) 제1번에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호장공의 출생년에 대하여 1204년설, 1206년설, 1212년설이 있다. 1204년설은 「문산평도공사당실록」p.279 대종중 연혁에 기록되어 있다. 1206년설은 계축호적에 나타난 밀직공이 태어난 해가 1296년이라 1세대를 30년으로 보고 4세 밀직공에서 3대 90년을 역산한 해이고, 1212년설은 문정공이 태어난 해가 1332년이니 5세 4대 120년을 역산한 해이다. . . . . . "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설(說)"이랄 것도 없다. 자료의 기록을 오해한 것이거나 호사가(好事家)들의 심심풀이 이야기일 뿐이다.
 
첫째 1204년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마도 「문산평도공사당실록」p.279 대종중 연혁의 기록을 <시대정신>의 저자께서 오해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문산평도공사당실록」p.279 대종중 연혁 도표를 보면, 고려 희종(熙宗)의 재위기간 1204~1211 바로 옆 연혁란에 "始祖 誕生, 戶長公 諱 應珠"라고 써 놓은 것을 보고 희종의 즉위년인 1204년을 호장공의 생년으로 착각하신 것 같다. 이러한 착각(오해)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기록은 2016년 <반남수첩(潘南手帖)>에서도 발견된다. 대종중에서는 기록물을 제작할 때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1206년설은 영향력 있는 어떤 원로 종인께서 밀직공의 생년 1296년을 기준하여 1세대 30년으로 계산해 90년을 뺀 1206년을 호장공의 생년으로 삼아 그 해를 "반남기원(潘南紀元)"으로 하자는 주장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1212년설은 문정공의 생년 1332년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만 다를 뿐 그 기본적인 방식은 둘째 방식과 동일하다.
 
문제는 1세대 = 30년이라는 일률적 잣대로 역산하여 선대 할아버지의 생년(生年)을 특정(特定)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1세대 = 30년은 추상적 평균 수치일 뿐 실제로는 사례마다 다를 수 있다. 더구나 옛날에는 조혼(早婚)하는 경향이 있어서 30세 이전에 자녀를 보는 경우가 아주 흔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호장공께서 대략 1200년~1240년 사이에 태어나지 않으셨을까 하는 다소 막연한 추측은 해 볼 수 있겠으나 이러한 추측조차 큰 의미는 없다. 더욱이 특정 연도를 호장공의 출생연도로 지정하는 것이야 말로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일이다. (참고: 생년을 실제와 다르게 지정하면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추기:
「문산평도공사당실록」p.279 대종중 연혁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도표에 보면, "공민왕(22) 1373" 바로 옆 연혁란에 "潘南朴氏 得貫 癸丑 戶籍"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계축호적을 "득관" 문서로 오인한 견해에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판관공후 승혁 謹記

댓글목록

박창서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박창서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대종중 자유게시판의
<호장공의 생년(生年)???>은이라는 좋은 글을 올려주신<판관공후 승혁 謹記> 아저씨께 감사의 말씀과 그 노고에 격려를 드립니다. 

이에 제가 느낀 바를 아래와 같이 올리고자합니다.

2014년 발행 반남박씨 편람에서는 1.2.3세는 출생의 기록이 없습니다.
이는 종전과는 다르게 2014년도 발행한 편람은 시조 등의 출생을 모른다고 본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 제가 보유한 1차 임오보(1642년), 5차 갑자보(1924년), 7차 경신보(1890년) 그리고 8차 임진보(2012년)에서도 1.2.3세의 출생 기록이 없습니다.
족보에서도 호장공 등의 출생을 알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호장공 등의 출생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 종증의 공식 입장일 것인데 과거의 잘못된 기록을 참고로 하여 확실한 근거가 없는 기록을 근거로 하여 호공등의 출생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 종중의 공식 입장과는 배반되는 억지 주장으로 우리 종중 역사를 혼란스럽게 하는 행위로서 즉시 시정되어야할 사항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호장공 이상의 선계는 알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을 종인들이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도 우리 대종중에서 시급히 정립해야 할 문제점으로 봅니다.

2016.7.13
박창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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