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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소설 (小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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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동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1-22 14:59 조회2,120회 댓글0건

본문

소설(小雪)

【二十四節候 와 俗節】

금년, 乙未年(2015년)에“소설”은 양력 11월 23일이고

음력은 10월 12日 이다

○소설은 이날 첫눈이 내린다 하여 소설(小雪)이라고 한다

○소설은 24절기 중에 20번째 [中氣]이며,

○소설은 10월의 中氣로 立冬과 大雪 사이에 들어있다

○소설은 太陽 의 黃經이 240°를 통과 할 때이며

○소설은 동지로 부터 335일째 되는 날이다

太歲는 乙未이고 月建은 丁亥이고 日辰은 癸卯이며

節入時刻은 正子時이다, 卦는 兌 95이다,


≪절입시각≫ 오전 0(零)時 二十六分 (0시 26분[正子時])

일출시각 = 오전 7시 19분 (낮(晝) = 9시간 58분)

일입시각 = 오후 5시 17분 (밤(夜) = 14시간 2분)


≪ 기 후 ≫宣明曆,『高麗史』卷50,志4,曆,宣明曆 上,氣候表,

[72후]- 初候에 무지개가 나타나지 않는다 (虹藏不見)

次候에 천기는 상승하고 지기는 하강한다 (天氣上昇,地氣下降)

末候는 천지기운이 막혀서 겨울이된다,(閉塞而成冬)


≪소설의뜻≫

○소설은 이날부터 첫눈이 내리는 계절이 되었다는 뜻이다,

○겨울이 시작된 입동후 15일째 되는 날로서 우리나라 에서는“소설”을 명절로 생각하지 않지만 눈이 내릴 정도로 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겨울 채비를 한다

○또 아직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므로“소춘(小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 風俗 ,이칭,속담,

1);[제목] “ 古失 [레] ” 『신동아』1935年 10月號,

[원문] 〈古失仙〉은 檀朝時(檀君朝鮮때)田事를 掌하여 人民에게

稼檣을 가르친 [선비]이니 後世의 農家의 田夫가 田野에서 耦耕하다가

“점심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먼저 한술을 떠서 한데 던지며 祝念하여 일으대 [고시레]라 함은 대개 報本追遠하는 뜻을 표하여 그리함 이외다,,,


2); [제목] “ 成造祭 ”『신동아』1935年 10月號,

[원문] 今俗에 民家에서 매양 十月에 이르러 農事를 하면 햇나락으로 [시루떡]을 쩌서 술과 과일을 함께 차려놓고 神에게 報하는 俗이 있으니 이를 이르되 “成造”라 합니다,

[성조]란 것은 곧 家를 造成한다는 意味이니 이는 檀帝께서 비로소 人民의 居處의 制를 가르치사 宮室을 造成하신 故로 後世에 人民이 그 本을 不忘하여 반드시 檀木下에 降하신 [상달(十月)] 로써 天神의 功을 報한다 이르나니 一說에 家室을 建할 時에도 成造神을 섬겨왔다 이름니다,

이를 [배달임금]의 功德을 紀念하는 뜻도 됨니다 民間信仰의 한낫 餘韻으로 보게 됨니다,,,


2,○ 옛날 기록에는

1);≪손돌 바람의 전설≫ 『세시풍속자료집성』10月編,『동국세시기』

대개“소설”즈음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 진다 이날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하며 뱃사람들은 소설 무렵에는 배를 잘 뛰우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몽진을 가던 때라고도 하고, 조선시대에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仁祖)가 한강을 건너던 때라고

도 한다

사공중에 손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피난가는 왕을 모시고 뱃길을 서둘렀지만 왕이 보아하니 손돌이 자꾸 일부러 그런 것처럼 물살이 급한 뱃길을 잡아 노를 젓는 것이였다 왕은 의심이 갔다 그래서 신하를 통해서 물살이 세지 않은 안전한 곳으로 뱃길을 잡으라고 하였지만 손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은 의심을 이기지 못하고 선상에서 손돌을 참수하고 말았다

손돌은 죽기전에 억울함을 하소연 하였지만 소용 없음을 알고 바가지를 하나 내놓으며 물에 띄운 바가지가 가는 길을 따라 뱃길을 잡으라고 말하고 죽음을 당했다

물살은 점점 급해지고 일행은 하는수 없이 손돌이 가르처 준대로 바가지를 물에 띄웠다 바가지는 세찬 물살을 따라 흘러 갔으며 왕을 실은 배도 그 뒤를 따랐다 무사히 뭍에 내린 왕은 그때서야 비로소 손돌의 재주와 충심을 알았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손돌을 죽인 후에 더더욱 세찬 바람이 불고 물살이 급해졌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싣고 가던 말의 목을 잘라 제사를 모셨더니 파도가 잠잠해 졌다고도 한다,뭍에 도착한 왕은 곧 후해를 하였지만 손돌의 목숨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현재의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덕포진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장지(葬地)를 정해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이때가 음력 10월 20일이었는데 매년 소설 즈음인 이맘때가 대면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 진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무렵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東國歲時記에서),,(이 전설은 김포시,강화시,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자료 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도평],)


2); 三韓- 鬼神祭祀 『晉書』卷97,東夷列傳67,馬韓,

[원문] 俗信鬼神 常以五月耕種畢 羣聚歌舞以祭神 至十月農事畢 亦如之,

[해설] 풍속에 귀신을 믿어 해마다 오월에 씨뿌리기를 마치고

떼를 지어 노래하고 춤추는 것으로 귀닌에게 제사 지낸다

10월에 이르려 농사일을 마치고서도 이와 같이 한다,,

3); 新羅- 神宮祭祀. 『三國史記』卷12,新羅本紀12,景哀王 元年,

[원문] 冬十月 親祀神宮 大赦,

[해설] 겨울10월에 친히 신궁에 제사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4); 新羅- 八關會,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眞興王33年,

[원문] 冬十月二十日 爲戰死士卒 設八關筵會於外寺 七日罷,

[해설] 겨울10월 20일에 전사한 사졸을 위하여

팔관 연회를 바깥절에 베풀었다가 7일 만에 파하였다,,

5); 高句麗- 天祭, 『魏書』卷100 列傳88,高句麗,

[원문] 常以十月天祭 國中大會,

[해설] 해마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로 國中에 크게 모인다,,

6); 百濟- 天地 祭祀, 『三國史記』卷23百濟本紀1始祖溫祚王38年

[원문]冬十月王築大壇祠天地,

[해설] 겨울10월에 왕이 대단을 쌓고 하늘과 땅에 제사지냈다,

[원문] 冬十月 王設壇祭天地, 『三國史記』卷26,百濟本紀4,東城王11年,

[해설]겨울 10월에 왕이 단을 설치하고 하늘과 땅에 제사지냈다,,

7); 高麗- 八關會,

[원문] 冬十月 命停兩京八關會, 『高麗史』卷3,世家3成宗6年十月,

[해설]겨울10월에 영경(개경과 서경)의 팔관회를 정자하라고 명령하였다

[원문] 冬十月 罷兩京八關會, 『高麗史節要』卷2,成宗6年 10月,

[해설] 겨울 10월에 개경과 서경의 팔관회를 폐지 하였다,


3, ○ 詩文 (시문)

1); [제목] 小雪, 蔡之洪, 『봉암집』卷 2, 詩,

[원문] 山河忽異色 積雪深盈尺 來歲知豊稔 麥熟蝗혈辟,

(稔 - 풍년들임, 蝗 - 황충이황, 灾 - 재앙재,)

[해설] 산하가 문득 색이 바뀌었으니,

쌓인 눈이 한자가량이나 되네,

네년에는 풍년이 들것을 알겠으니,

보리가 익을적에 메뚜기 피해를 물리칠수 있겠네,,,


2); [제목] 十月, 趙秀三, 朝鮮大歲時記저자 (1762 ∼ 1849),

[원문] 玄冬上月合天德, 造成迎神宅兆修,

午日莫如維戊吉, 萬家蒸餠氣浮浮,

[해설] 겨울 상달이라 하늘의 덕과 일치 되니

성주신을 맞이하여 집안의 길조를 닦네

말의 날 중 무오날이 가장 길한 날이니

집집마다 떡 찌는 김 모락모락 피어나네,,


3); [제목] 初冬雨夜, (卞季良-『춘정집』권 1,)

[원문] 旅窓冬夜靜 危坐轉悠哉 夢斷三更雨 心鏡十月雷

壁燈熏散秩 爐火沒深灰 少壯須勤力 光陰自解催

[해설] 초겨울 비 내리는 밤,

겨울밤 고요한 객사의 창가에, 정좌하니 갈수록 한적해 지내,

삼경에 빗소리에 잠이깨고, 10월의 천둥소리에 마음이 놀라네,

벽에 걸린 등불은 서책을 그을리고, 화로의 불씨는 재속에 숨어 있네,

젊었을 때 부지런히 공부하게나, 세월은 제 스스로 재촉한다네,,,


4,○신문 잡지,

1);[제목] 香山祭-[鏡城](내 고장의 風俗習慣)『동아일보』1927년,3,11,

[원문] ○우리고장에서는 해마다 10월초생이 되면 香山祭가 盛大히

擧行 됨니다,

○왼 일년동안 힘드려 지여논 새 곡식으로 떡을 치며 술을 빚어놓고 왼 집 안 왼 洞里가 모혀서 거룩하게 그날 하루를 지냄니다,

○그런데 十月을 들어서서 아즉 香山祭를 지내기 전에는 남과 거래를 하지 않으며 □重한 손님이 오더라도 찰밥은 짓지 아니 합니다,

○또는 남과 싸우거나 누구를 꾸짓거나 牛馬六□에 까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안슴니다,

○香山祭를 지낸 飮食은 아무리 먹어도 病이 나거나 滯하거나 하는 일이 없 어서 이것을 『한배』님의 德澤이라 하야 모다 유달니 생각함니다,

○이와 가치 『한배』님을 위하는 것은 북도인의 한 자랑거리라고도 하겠슴니다,『한배』님이 내리신 것은 벌서 저-먼 四千年前 옛날의 일이 아님니까

그러나 한결같이 오늘까지 내려옴니다,,,

(鏡城-車南松 기자)『동아일보』 1927年 3月 11日,,,

(연천향교 度坪 박동일(원우) 調査整理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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