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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목아박물관, 나무쟁이 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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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태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1-05 01:50 조회3,0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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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갖어온 글 

땅의 歷史-목각장 박찬수


여강변에 사는 고집쟁이 박찬수.

1948년생인 박찬수는 무형문화재 108호 목조각장이다. 인생 여로는 여정수와 비슷하다. 가난의 대명사 경남 산청에서 날 풀만 자라는 촌구석 생초면(生草面) 그중에서도 제일 촌구석인 상촌리에서 태어났다. 가난을 이기지 못한 집은 박찬수가 열두 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박찬수는 왕십리에서 목각을 하는 김성수 아래 조각을 배웠다. 도장도 파고 공예품도 만들고 나무에 인두화도 그렸다. 그러다 집안을 따라 원주로 갔는데 중학교 미술 시간에 미술 선생 이운식 눈에 띄어 데생과 흙과 주물을 배웠다. 30대에는 서울 고려조각학원에서 홍익대 교수 김찬식으로부터 현대 조각을 배웠다. 10대부터 30대까지 정규 학력은 변변찮지만 당대 최고수들로부터 나무 보는 법과 칼 쓰는 법을 다 배웠다.

여강 따라 남하하면 나오는 목아박물관(사진 위)은 무형문화재 108호 목조각장 박찬수가 만든 공간이다. 박찬수는 “전통은 계승도 중요하지만 발전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박종인 기자

가난해서 시작한 목각이 천직으로
나이 48세에 최연소 무형문화재…
고향 닮은 여주에 박물관 지어

1950~1970년대 서울 반도호텔 아케이드에 있던 화랑은 박찬수 같은 쟁이들의 비상구였다. 거기 전시된 지게에 물동이에 갓 쓴 할아버지 조각상은 미8군 군무원과 군인들에게 대인기였다. 박찬수를 가르친 도장장이 김성수는 민속품 조각 일인자였다. 박찬수에게도 먹고살려고 한 일이 천직이 되어갔다. 생계를 위해 나무를 깎으며 틈틈이 박찬수는 작품을 만들어 공모전에 출품했다. 1982년 단원예술제에서 대상을 시작으로 1986년 대한민국 불교미술전 대상, 1989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까지 공예로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았다. 그리고 1996년 만 48세에 건국 사상 최연소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열두 살에 고향을 떠난 지 36년 만이다. 그때까지 박찬수는 고향을 좀체 찾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마흔이 될 때까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이었다. 지독하게 가난했고 지독하게 암울했으니까."

대신 처가가 있는 여주에 박물관을 지었다. 아예 원적을 파서 여주로 옮기고 고향 산청 경호천을 닮은 여강 강변에 땅을 사서 끌과 자귀와 칼로 집을 지었다. 직접 만든 작품과 수집한 전통 공예 작품을 거기에 모았다. 세상 살다 보니 남들과 다투고 할퀴어대서 뭐하나 싶어서 불교에 기독교에 단군까지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정원 한쪽에는 첨성대를 닮은 작은 교회가 있다. 이름은 '하늘교회'다. 몸 하나 눕히기도 좁은 공간에 들어가면 천장에서 빛이 내려오고 십자가상이 그 빛을 받는다. 교회 앞에는 푸근하게 생긴 늙은 수녀상이 웃는다.

싸우고 할퀴기 싫으니 더 이상 고향을 싫어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박찬수는 고향 생초면에 전수관을 지었다. 산청 명물이다. 여주 박물관을 축소한 듯 예쁘고 웅장한 작품들이 그만큼 웅장한 집 속에서 웃는다.

이미지 크게보기목아박물관에 있는 ‘하늘교회’ 내부. 아늑하고 경건하다.

그런데 작품들이 하나같이 비정형적이다. 석가모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 벌리고 웃는가 하면 목사와 신부와 이슬람 이맘과 승려가 손잡고 웃는다. 박찬수가 말했다. "전통 작품을 똑같이 재현하는 작업은 한두 번이면 된다. 더 하면 그건 짝퉁이지 작품인가." 전통을 계승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계승한 그 전통을 발전시키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1000년 뒤 여강 강변 유적지에서 출토될 장인(匠人)들 작품들을 보고 "조선 시대 이후 목공예는 발전이 없다"고 결론짓지 않겠는가.

지난해 박찬수는 강원도 영월 김삿갓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지게로 나무 날라 산골짝에 집을 짓고 명상과 작업을 하며 산다. 호(號)는 목아(木芽)에서 고림(古林)으로 바꿨다. 목아는 나무에서 싹을 틔운다는 뜻이고, 고림은 늙은 숲이라는 뜻이다. 이제까지 나무에 숨어 있던 싹을 틔우는 작업을 했으니 이제 그 싹이 커 나갈 수 있도록 늙은 숲 그림자가 되겠다는 말이라 했다. 핏줄 따라 공예를 전공한 두 아들이 박물관과 전수관을 운영한다. 박물관에는 며느리가 운영하는 찻집이 있다. 테이블도 모두 시아버지 박찬수가 만들었다.

같은 나무라도, 같은 돌이라도 만나는 사람 따라 갈 길이 다르다. 박찬수를 만나면 나무는 부처가 되고 성모 마리아가 된다. 여정수를 만나면 폐기된 건축 석재는 현대사가 된다. 여주 여강 강변을 거닐며 그 살아 숨 쉬는 돌과 나무를 만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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