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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개혁을 바란다 30(바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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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창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8-13 15:30 조회2,6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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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개혁을 바란다 30(바른역)

 

박은(평도공)과 심온(안효공)

(세평 뜻①어떤 인물이나 일에 대하여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평판)라고 합니다


<조선건국과 평도공의 생애5)

충녕대군忠寧大君이 세자로 책봉될 무렵부터 심온沈溫과 대립해,1418년(세종 즉위년)심온의 옥사 때에는 심온의 반대 입장에서 관여했다는 세평을 듣고 있다.> 라는 글을 봅니다. 구전이나 인터넷 등에서 위와 같이 사실과는 거리가 먼 세평을 듣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평도공과 안효공(平度公 安孝公)과 잘못알려진 청송심씨네와의 관계(박태서)평도공과안효공 심 온의 불행:박태서>에서 보면 다분히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보입니다.

 

 

또 <성씨에 따른 뒷 얘기들-이덕일 글을(결혼 금하는 청송 심씨와 반남 박씨)보면 서로에 대한 원한 때문에 혼인을 거부하던 성씨들도 있었는데 청송 심씨와 반남 박씨가 한때 그랬다. 세종비 소헌왕후 심씨의 부친 심온(沈溫)은 세종의 즉위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세종 즉위년(1418)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갔다가 그를 전별하는 거마(車馬)가 장안을 뒤덮었던 것이 상왕 태종의 심기를 건드려 화를 당한다. 태종은 심온의 동생 심정이 총제(摠制)로 있으면서 금위(禁衛) 군사로 상왕(태종)과 주상(세종) 두 분을 호위하려니 숫자가 적다며 불평한 것을 역모로 몰아 고문 끝에 심온을 끌어들인다. 귀국 길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사형 당한 심온은 이를 좌상 박은(朴訔)의 무고 탓으로 돌려 이후로는 박씨와 혼인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두 집안이 혼인하는 예가 드물었는데 사실상 심온을 죽인 인물은 박은이 아니라 태종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위 여러 자료들에서 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종인들은 세상의 세평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015.8.13
     
http://cafe.daum.net/bannampark
           pcs13191@daum.net
             010-3067-6704
            카페지기 박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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