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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도공의修學 (평도공은 어떻게 공부를 하셨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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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태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5-25 13:38 조회2,902회 댓글0건

본문

평도공의修學 (평도공은 어떻게 공부를 하셨을까 ?)

향사(鄕寺)로 글을 읽으러 가는 박생(朴甥)을 보내다.

 

내 생질은 기린의 뿔과 같고요 / 吾甥似麟角

그 아비는 용 머리의 다음인데 / 乃父亞龍頭

세상 경시하여 구학에 버려졌고 / 輕世遂塡壑

가문 전함은 위태롭기 그지없네 / 傳家如綴旒

적적한 풍경은 산사의 밤이요 / 寂寥山寺夜

아스라함은 해문의 가을이로다 / 縹渺海門秋

잘 배워서 선친의 뜻 계승하여 / 好學繼先志

후일에 의당 태학에 유학해야지 / 他年當出游


까닭 없이 내 얼굴 붉어지어라
/ 無端赤我面

가고파도 내 머리는 이미 희었네 / 欲去白吾頭

서책 끼고 태학에 유학할 적엔 / 鼓篋游庠序

남 따라서 천자도 배알했었는데 / 隨行拜冕旒

질병 앓은 지가 지금 몇 해던고 / 呻吟今幾歲

일각이 삼추같이 지루도 하여라 / 頃刻似三秋

길은 막히고 몸 또한 노쇠하거니 / 路梗身衰老

무슨 도리로 다시 멀리 놀아 볼꼬 / 何從更遠游

[C-001]박생(朴甥) : 박상충(朴尙衷)의 아들로서 이색의 생질이 되는 박은(朴訔)을 가리킨다.

[D-001]기린의 뿔 : 세상에 얻기 어려운 뛰어난 인재를 비유한 말이다.

[D-002]…… 다음인데 : 그 아비란 바로 박은의 아버지인 박상충을 가리키고, 용 머리[龍頭]란 본디 장원(壯元)을 가리킨 말이고 보면, 박상충이 갑과(甲科) 제이인(第二人)으로 급제한 것을 이른 말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D-003]세상 …… 그지없네 : 구학(溝壑)에 버려졌다는 것은 공자가 일찍이 곤궁함을 잘 견디는 지사(志士)를 일러 지사는 자기 시체가 구학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한 데서 온 말인데, 박상충은 친명파(親明派)로서 일찍이 친원파(親元派)들과 강력 대립했다가 화를 입어 유배 도중에 죽었고, 또 아들도 박은밖에 두지 못했으므로 이른 말이다.

이 시는 목은집에 수록된 것으로 시의 번역은 고전 번역원에서 한 것이다.



위의 시
()는 평도공의 외삼촌 목은 이색(李穡) 선생이 산사로 공부하러 떠나는 생질 박은(朴訔)을 위하여 지은 시()로 평도공께서 절에서 독학하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도공께서
1385년 진사과에 합격하신후 1388년 문과급제 할 때 대책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
대책(對策)

製述業文憲公徒成均館進士臣朴訔 本貫潘南縣

父奉順大夫判典校寺事右文館直提學 尙衷

 

문헌공도(文憲公徒)1055년 고려의 대학자 최충(崔沖)벼슬을 그만두고 후진양성을 위해 설립하고, 이는 개경 송악산 아래자하동(紫霞洞)에 있었으며 수많은 학도를 배출한 교육기관이다.



1375
년 부친 문정공(尙衷)께서 이인임을 배척하시다 최영의 매질로 인하여 유배도중 개경 동문밖 청교역에서 돌아가시고 작은 아버지인 판서공(尙眞)도 유배를 당하여 천애 고아가 된 남매를 외삼촌인 목은 이색선생께서 훈육을 담당하신 듯하다.

목은 선생께서 평도공의 여동생을 시집보내며 지은 시도 있다.


목은선생의 年譜에 의하면 선생 16세 때 구제도회(九齊都會)에 참석하여 각촉부(刻燭賦)에서 1등하다라는 기록이  있고 구제도회는 문헌공도의 다른 명칭이고 각촉부는 촛불을 켜놓고 초가 타내려 가는 일정 부분에 금을 새겨 놓아 그 시간 안에 시를 짓게 하는 일종의 경시대회로 문헌공도에만 있는 특별한 시험이다.

목은 선생께서 문헌공도 출신이기에 평도공도 이곳에서 수학을 하신듯하고 고려말에는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공도는 개경 북쪽 송악산 아래 골짜기 자하동에서 독서를 하지만 여름철 더울 때는 개경 동쪽 탄현문 밖에 있는 귀법사에서 하과도회(夏課都會)를 열고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

이색선생께서 지은 시가 하과도회에 참석차 귀법사로 가는 생질을 위해 쓴 시로 볼수도 있다

귀법사의 하과도회를 문헌공도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 광정으로 보면

평도공께서 산사에서 독학을 했다고 하기보다는 문헌공도에서 수학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 타당성이 있지 않을까.



<
참고문헌>

조은집

고전번역원 데이터베이스

고려시대 교육제도사 연구(박찬수 판관공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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