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헌공 묘소 참배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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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서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8 16:10 조회1,950회 댓글0건본문
졸헌공 묘소 참배후기
2007.9.9일 문산 봉서리 졸헌공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하고 왔다.
묘소를 관리하는 분이 정성을 다하여 벌초를 하고 있음을 보고는 후손으로서 마음 든든하였다. 묘소관리를 잘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졸헌공(拙軒公)박응복(朴應福)할아버님은 1549년(명종4)사마시에 합격,1564년에 식년문과 을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저작·춘추관 봉교·전적·감찰·예조좌랑·병조좌랑·정언·지평·헌납·장령·사간·집의·성균관사예·성균관사성 등을 역임하셨다.
그러나 동서분당이 되어 당쟁이 일기 시작하자 한때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힐 생각도 하였으나, 1577년(선조 10)다시 관계에 나와 집의·동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공조참의·호조참의를 거치고, 병조참의로 있을 때 당시 병조판서 이이(李珥)를 배척하는 상소가 받아들여지고 지지하는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보고 사직하시었다.
1589년 병조참판에 제수 되어 대사헌,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同知義禁)을 거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참판 겸 부총관으로서 왕을 호종하였고, 의주(義州)의 행재소(行在所)에서 대사간·공조참판을 지내셨다.
1593년 왕을 호종하고 환도하던 중 해주에 이르러 병으로 인하여 뒤에 떨어졌다가, 1595년 왕비를 호종하여 환도한 뒤 형조참판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왕비를 호종하고 수안(遂安)까지 가서 이듬해 그곳에서 병으로 돌아가셨다.
졸헌공(拙軒公)할아버님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운바가 있어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오면서 느낀 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종사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헌신적으로 할 뿐이지 무엇을 바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지 선조님을 위하는 마음 하나이어야 한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오만과 독선(獨善)으로 종중을 혼탁케 하게 하는 것은 종원들이 허용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始祖 호장공 할아버님의 한 자손이기에 파벌(派閥)의식(意識)으로 편가르기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평무사로 애종심을 갖아야하고 솔직 담백하게 종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 종중은 오십대 육십대 봉사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선산수호 祭禮(제례) 총회준비 등에 젊은 종원들이 많이 참여해야 합니다.
종중을 잘못한다 나무라지만 말고 남이 못하는 것 내가 한번 해보자고 솔선수범 하는 종원이 많았으면 합니다. 산소관리에 헌신적의로 노력하신 오창공파 찬우씨께 감사 드립니다.
2007.9.9
졸헌공파 春緖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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