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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한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3-03 18:13 조회1,6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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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父님의 글은 언제나 경외함을 가지고 읽고 있습니다. 늘 풍부한 자료와 해박한 식견으로 밝게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除下者인 제게 경칭으로 부르심은 감당할 호칭이 아닙니다. 그런 호칭은 오히려 저를 민망하게 하고, 남들로 하여금 비웃을 살 뿐입니다.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재배하옵고, 태종 12년(1412)12월 13일자 기사에 이르기를, “潘城君 朴訔의 本鄕을 羅州로 내려주었다. 朴訔은 본래 羅州 任內 潘南縣 사람인데, 이제 例에 따라 任內를 革罷하여, 羅州에 합치므로 이 같은 命이 있었으니 朴訔의 請에 따름이었다. 뒤에 錦川君으로 고쳐 封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5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其하나. 朴訔은 본래 반남현 사람이다. 其 둘. 潘南縣은 任內였다. 其 셋. 任內를 혁파하여, 羅州에 합치었다. 其 넷. 朴訔의 請으로 그의 本을 羅州로 내린다는 命이 있었다. 其다섯. 뒤에 君號를 錦川으로 고쳐 封하였다. 저는 여기서 其 넷째 항목을 주시하여, 제 의견을 나타내어 글을 써본 것입니다. 密直公의 癸丑 戶籍에는 潘南으로 나와 있음으로, 아마도 그때까지는 平度公이외의 다른 후손들도 반남으로 본적을 기록하여 왔는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는 平度公의 高麗 文科榜目을 가지고 있지 못함으로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음이 유감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저로서는 平度公께서 先考의 號인 潘南을 忌諱하여 羅州를 本으로 擇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일 뿐, 주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도 일고의 가치는 있는 것이라 여깁니다. 2014년 3월 3일 평택에서 漢雨 頓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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