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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燕巖先生의 歷史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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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한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1-10 13:19 조회3,4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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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先生의 역사관.

 

서론.

요사이 역사 교과서 채택을 울러 싸고 사회적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수능점수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역사(국사)강의도 하지 않아, 학생들이 자국의 역사도 알지 못하는 교육의 편향이 두드러지자, 우려하는 소리가 높았다. 이에 정부가 필수과목으로 수능의 점수에 반영한다는 발표가 있자, 각 고등학교에서 부랴부랴 고등학생들을 가르칠 역사교과서를 선정하고 나서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극우보수단체가 펴낸 검정교과서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계에서 만들어 놓은 좌우의 극한 대립으로 나라가 병들어가고 있다.

 조선시대의 당쟁 싸움은 우리나라만의 문제에 머무르는 中近世時代에 벌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나라의 안녕에는 큰 문제가 없이 오랜 시간 나라를 지탱하며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近代에 들어오자 그 병폐로 인하여 나라를 일본 제국에게 잃는 비극을 맛보았으며, 그 비극의 연장선상 속에 오늘날의 남북 분리의 비극적 시대를 살게 됨이 있는 것이다. 일본제국에게 나라를 잃음과 동시에 우리나라는 자주권을 잃어버렸고, 역사학 또한 비극을 맞이하였으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다루고 다듬는 학술적인 역사학도, 외세의 가르침에서 출발하는 불우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소위 황국사관에 의한 역사학을 일본인 역사가들의 손에 가르침을 받아왔고, 해방이 되어서도 이들에게 교육받은 역사학자들이 주류가 되어 강단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일본인들에 의하여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배우게 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어려서 李丙燾씨가 펴낸 문교부 검정 교과서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웠고 그 교과서의 내용으로 시험을 보며 자란 세대이다. 그러니 그 교과서가 잘못 기록되고 또 왜곡되었으리라고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그러기에 조금도 의심 없이 몇 십 년을 살아오다가, 熱河日記를 읽으면서 문득 무엇인가 잘못알고 있었구나 하는 을 잡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고대사.

桓雄이 무리 三千을 거느리고 太白山 꼭대기 神檀樹 아래로 내려왔다. 熊女와 혼인하여 낳은 檀君王儉平壤都邑하고 나라를 세우니 이를 비로소 朝鮮이라 하였다라고 하는 古朝鮮의 개창설화가 一然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또 중국의 ()나라 桀王武王에 의하여 滅亡하자, 箕子가 한 무리의 백성을 이끌고 머나먼 朝鮮의 땅인 韓半島平壤까지 내려와 箕子朝鮮을 세웠다는 이 있다.

이것은 마치 새롭게 발견된 美國大陸에 첫발을 디딘 유럽의 開拓民東部의 땅을 두고 머나먼 西部를 찾아 太平洋 沿岸에 나라를 세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지금까지 箕子平壤에 나라를 세웠고 그의 가 평양에 있다고 하면서 그대로 믿고 있다. 그리고 또 西漢衛滿朝鮮하고 樂浪平壤에 두었었다는 역사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三國遺事에는古朝鮮(王儉朝鮮)의 건국내력을 설화처럼 기록하고 있다.

魏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바로 임금과 같은 시기이다.

古記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 桓因(天帝를 말함)의 서자 桓雄이 자주 천하에 듯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는 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여 즉시 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 보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桓雄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神檀樹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神市라 하고 이분을 桓雄天王이라 한다. 風伯, 雨師, 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려 교화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곰과 호랑이의 설화가 등장한다.)

檀君王儉임금이 즉위한지 50년이 되는 庚寅年平壤城에 도읍을 하고, 비로소 朝鮮이라고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니, 그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간 생략)

나라배구전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高句麗는 본래 孤竹國이었는데, 나라에서 箕子를 봉하면서 朝鮮이라 하였다. 나라가 (이곳을) 세 군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이것이 곧 玄菟, 樂浪, 帶方 이다.” 通典에도 역시 이런 말과 같다.”라고 기록하였다.

一然三國遺事에서

 주돈식(周敦植)은 그가 쓴朝鮮族歷史에서 설명하기를,

신용하(慎鏞廈)박사는韓國 原民族 형성이라는 글에서 우리 민족은 (han), (), (),3부족의 결합에 의해 형성되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단군신화에 포함되어 있는 신화적 요소를 접어두고 사실적 요소만을 분리하여 재구성해보더라도 檀君神話古朝鮮建國說話임을 바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전 세계의 원시부족들은 토탬을 갖고 있으며, 이 토탬들은 동물이 가장 많고 기타 추상 물 토탬도 있다. 부족의 이름들은 대체로 토탬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태양은 동물 토탬도 아니지만 태양 토탬을 일종의 정신적 토탬 이라고 해석한다면 단군신화에는 3개의 토탬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1. 태양() 토탬 부족. (2. ()토탬 부족. (3. ()토탬 부족.
태양 토탬 부족은 환인, 환웅에서 선명히 들어나듯이 환(, 또는han) 부족이다. 이들은 한울님의 아들, 자손이라고 생각하며, 태양, 밝음, 광명, 새빛, 햇볕을 숭배한다.

곰 부족은 부족을 가리킨다.後漢書貊夷熊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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