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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승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1-05 07:33 조회2,2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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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대한 깊은 연구와 예리한 분석을 제시해 주셔서 족사(族史)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한우 종인님께서 분석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1) 공순공께서 병인년(1506년)에 썼다고 하는 詰할아버지 행장에 어떻게 숙종 신유년(1681년)에 내려진 반남선생의 시호(문정 文正)가 나타날 수 있는가? 전후 상황에 맞지 않는다. (2) 행장에 보면 詰할아버지가 직장공(휘 상경)의 子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 뒤에 나온 임오보(1642), 계해보(1683), 병술보(1766) 등에 계속하여 선계를 알 수 없는 派로 별보에 등재되었는가? 이 또한 전후 상황에 맞지 않는다. (3) 따라서 詰 행장은 후세의 누군가 공순공을 사칭하여 쓴 위작(僞作)으로 판단된다.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 아울러, 문득 행장 속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하나 더 눈에 띄어 적어 봅니다. 위의 행장 속에 보면, 반남선생(휘 상충)께서 어린 詰을 가르치고 칭찬하시는 말씀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이해가 안 됩니다. 행장의 기록에 詰할아버지의 생년이 고려 공양왕 경오년(1390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반남선생께서는 우왕 을묘년(1375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즉 반남선생께서는 詰할아버지가 태어나시기 15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행장에서 詰할아버지의 생년을 "恭讓朝庚午歲現于世"라고 분명한 표현을 사용하여 밝히고 있으니 공순공의 실수라고 볼 수도 없고, 반남선생의 卒年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역사(정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고 .......... 뭔가 큰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세보(족보)를 비롯하여 종중에 남아 있는 역사적 기록(자료)들을 좀 더 체계적, 과학적, 실증적으로 분석ㆍ고찰하여 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종사(宗史)를 세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우 종인님의 깊고 예리한 자료분석에 다시 한 번 더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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