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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逃召齋 (도소재)詰(힐)의 行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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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한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1-03 12:01 조회3,5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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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소재 행장(逃召齋行狀)

 () 백세(百世)에 그 유풍(遺風)을 듣는 자, 욕심 많은 자는 청렴해지고 어리석은 자는 뜻을 세워 깨달을 것이니 이 군자의 유덕(遺德)은 천지(天地)와 같이 무궁할 것이요, 일월(日月)과 같이 그 빛이 찬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건국 수천 년에 흥망성쇠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충신절사(忠臣節士)가 고려말에 가장 많았다.

 ()의 휘()는 힐()이며 자는 원직(元直)이요 호()는 도소재(逃召齋)이며 반남(潘南)인이다. 고려(高麗) 호장공(戶長公)의 아들 의()는 급제공(及第公)이요, 급제공의 아들() 윤무(允茂)는 진사(進士)로 증()이조참의(李朝參議), 그 아들 수()는 밀직부사(密直府使), 밀직공(密直公)이 삼자(三子)를 두니 장자는 상충(尙衷)으로 세칭 반남선생(潘南先生) () 문정(文正)이요, 차자는 상진(尙眞) 판서공(判書公)이며, 삼자는 상경(尙褧)으로 사온(司醞) 직장공(直長公)이니 직장공(直長公)은 도소재(逃召齋)의 아버지니라.

도소재(逃召齋)는 천성(天性)이 효우(孝友)하고, 용의(容儀)와 동정(動靜)이 단아하며 심지(心志)가 견고하여 부귀영화를 멀리하고, 청쾌(晴快)하여 진세(塵世)를 떠난 기상이더라. 어려서 백부(伯父) 반남선생에게 수학(修學)하는데 공은 재조(才藻)가 출중하고, 성질이 온후인자(溫厚仁慈)하여 타인의 선행을 찬양하며 악한 말은 한번 도 말하지 않으니 반남선생이 친구에게 이르기를장차 우리 집안을 빛낼 자는 이 사람이 될 것이다하셨다.

공이 성장하여 이목은(李牧隱)선생에게 수학(修學)할 때에 질의문답이 명백적정(明白適正)하고, 용의동정(容儀動靜)이 공손 검소하며, 심지(心志)가 충서(忠恕)하여 명예(名譽)와 이록(利祿)을 초개(草芥)같이 여기니 선생이 공을 원대한 인재로 칭찬하였고, 공이 또 정포은(鄭圃隱)선생 문하에 출입할 때에는 공()의 대도지기(大道之器)를 인정하여 선생이 무척 경중(敬重)하더라.

공이 시국(時局)의 비상(非常)함을 보고, 처세의 도()를 물으니 선생이 말씀하시되 연령에 노소의 차이가 있고 국은(國恩)에 경중이 있으니 그대는 잘 생각하여 처세하라 하시더라. 그 때에 공은 이미 여조문과(麗朝文科)에 급제하여 뜻을 확고히 정한바 있으니 여조(麗朝)가 망하고 이조(李朝)가 들어서니 전조(前朝)에 대한 충의심이 더욱 굳어지더라.정안군(靖安君 태종)이 즉위하시고 동문수학의 정으로 누차 공을 부르셨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제용동가대(濟用洞家垈)를 내리셨으나 받지 않고 안신동(安身洞 지금 경기 안성)으로 피신하여 사셨다.태종왕은 억지로 못하는 것을 알고 탄식하기를, 삼군(三軍)의 용맹은 뺏을 수 있을지언정 한 사람의 굳은 절개(節介)는 뺏을 수 없도다.”하니 공의 충절(忠節)은 일월(日月)의 빛을 능가하고 공정(恭靖) 태종의 아량은 천지(天地)와 같이 넓었으니, 공이 아니고서야 공정의 아량이 어떻게 베풀어졌으며 공정이 아니고서야 공의 높은 충절이 어찌 빛났으리요. 공의 충절은 삼은(三隱)과 같다고 할지니라. 또한 공은 익안군(益安君) 방의(芳毅 이태조 셋째아들)와 동서(同壻)로 조가연척(朝家聯戚)지간이나 왕래를 끊으니 익안군(益安君)이 서신을 보내되 그 글에 수양동(首陽洞)은 중국의 백이숙재(伯夷叔齋)의 은신처요 안신동(安身洞)은 도소재(逃召齋)의 은둔처니 그대에게 서신(書信)을 전한다.”하였으니 이 두 가지(정안군(靖安君)과 익안군(益安君)과의 교의)만으로도 공의 높은 절의(節義)는 후백세(後百世)에 빛날 것으로 은()나라의 백이숙제(伯夷叔齋)나 한()나라의 엄자능(嚴子陵)과 같은 절의(節義)더라.

()은 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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