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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河에 울린 '공후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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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한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12-20 13:37 조회4,320회 댓글0건

본문

朝鮮河에 울린 공후인(箜篌引)’의 노래.

朝鮮. 朝鮮河.

 

우리말에 삼수갑산이라는 관용구가 있다. 공교롭게 고조선 중심의 강이 바로 三水이다.

사기-조선전(史記-朝鮮傳)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선수(汕水),三水가 있으며 이것이 합쳐서 열수(洌水)가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 삼수로 비정되는 지역에는 백의 겨례의 선민들이 살고 있었던 甲山’ 즉 連山이 있는 것이다.

사실 삼수갑산은 함경남도에 있는 삼수와 갑산이 지세가 험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가기 힘든 곳이라는 뜻으로 몹시 어려운 지경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륙의 삼수와 갑산이 언제인가 발이 달려서 동쪽의 半島로 자리를 옮겼을까---

어찌됐든 朝鮮이라는 이름은 이 三水로 인하여 지어 졌다고 한다. 사기색은(史記索隱)의 음은 이며, 汕水가 있음으로 朝鮮의 명칭을 얻은 것이라고 밝힌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학자들은 北京一帶朝水(지금의 潮河)唐山一帶鮮水(두하(陡河)의 본명)二水에서 각기 첫 글자를 취하여 이 두 강을 아우른 지역을 朝鮮이라고 작명했다고 주장한다.

鮮水를 중국어로 발음이 같은 玄水(지금의 난하(灤河))로 보고 조하와 난하 일대를 두루 걸친 지역을 조선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조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큰 강이라면 난하가 바로 선수인 것 같기도 하다.

실제 나라가 멸망한 후 기자(箕子)는 연산(連山)기슭에 돌아가서(나라 옛 조상의 터)조하와 난하 부근에 나라를 세운다.
商書大傳“(기자가) 조선에 가자 무왕(武王)이 이를 듣고 조선을 봉해 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기자가 분봉을 받기 전 이미 조선이 있었으며, 그가 도착한 후 국명으로 분봉을 받았다면, 이 조선은 본래 조하와 난하 지역을 지칭하는 지명이었다는데 한결 무게가 실린다.

朝鮮, 朝鮮河라는 지명은 北宋시기의 兵書무경총요(武經總要)에 최초로 등장한다.
武經總要前集 燕京州郡十二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하를 지나 90리를 가면 북으로 古河口에 이른다.”라고 기록이 있다.
현재 북경시 북쪽에 있는 古北口는 과거 虎北口로 불렀으며 古河口 역시 虎北口의 변음이라는 지적이다.
 “
거용관(巨庸關)에서 서북쪽으로 朝鮮河 七道河를 지나 90리를 가면 호북구에 이른다.”고 어비(御批)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武經總要의 기록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七道河는 회하(懷河) 上流支流, 나중에 회하와 더불어 白河에 흘러든다.
그러나 朝鮮河支流에 불과한 七道河라고 하는 데는 무리가 있으며, 칠도하가 흘러드는 懷河, 나아가 白河朝鮮河로 보는 게 맞다. 백하는 북위(北魏)때부터 조하와 하나로 합류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의 潮白河가 바로 朝鮮河인 것이다.

이때 朝鮮河라는 지명은 三水처럼 더는 古朝鮮의 강역(疆域)을 지칭(指稱)하는 이 아니라, 엣 땅 위에서 어느 상징물(象徵物)의 이름으로 되고 있다.
 
古朝鮮의 강역(疆域)쪽으로 옮기면서 옛 땅에 地名으로 남은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지명의 고장은 古朝鮮과 한데 이어지면서 古朝鮮史實의 일부로 傳承되고 있으며, 훗날에는 또 나라에 복속되면서 나라의 史書의 일부로 기록되고 있다.

 

백년 나루터, 흘러간 옛 이야기.

2천 년 전, 바로 옛 지명 장소의 어느 한 나루에서 특기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고대 문학사에 일장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다.

나루에서 물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은 광부(鑛夫)와 그를 따라 물에 뛰어들어 죽은 아내, 그리고 그 아내가 남긴 구슬픈 노래는 천년의 옛 이야기에 남아 전해오고 있다.

 

      [님아 가람 건너지 마소]

公無渡河, 님아 가람 건너지 마소,

公竟渡河. 님이 가람 건너싀네.

墜河而死, 가람에 들어싀오시니

當奈公何?. 어저 님을 어이하리.

 

箜篌(공후)라는 악기를 타면서 부른 노래라는 의미의공후인(箜篌引)은 최초로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역사책史記에 등장한다. 이 책에서箜篌引은 제24권의 樂書에 들어있는相和篇에 실려 있다.

箜篌引의 창작 배경은 어느 강기슭의 朝鮮나루라고 東漢 말년 채옹(菜邕)(133~192)琴操에 기록되어 있다
훗날 유전되는 과정에서 윤색되면서 나라 악부시집西晉 최표(崔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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