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당 박회무, 용비어천가. 熟馬一匹賜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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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박회무朴檜茂
訔--葵--秉鈞--숙䃞--형珩--承任-漉--檜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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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회무(朴檜茂) / 宣祖 39 式年 進士 》 【본인 자】 중식(仲植) 【본인거주】 영천(榮川) 【본인구존】 구경하(具慶下) 【본인전력】 유학(幼學) |
【부친성명】 박녹(朴漉) 【부친품계】 봉직랑(奉直郞) 종5품 【부친관직】 의금부(義禁府)/전행도사(前行都事) 【안항(제)】 박종무..... |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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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2년(1610) 윤3월 18일(계해) 영천의 진사 박회무가 《용비어천가》를 바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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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營川)의 진사(進士) 박회무(朴檜茂)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책본을】 올리니, 전교하기를, “이는 바로 평소에 보고 싶었지만 얻지 못했던 것이다. 매우 기쁘다.”하였다.
○榮川進士朴檜茂進《龍飛御天歌》 冊本。 傳曰: “此乃平日願見, 而未得者, 深用嘉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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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2년(1610) 윤3월 18일(계해) 4번째기사 진사 박회무에게 말 1필을 내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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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하였다. “〈진사〉 박회무에게 숙마(熟馬) 1필을 내려 주라.” ○傳曰: “(進士) 朴檜茂, 熟馬一匹賜給。”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간략정보]
• 한자 朴檜茂
• 분야 역사/조선시대사
• 유형 인물
• 시대 조선
• 성격 의사(義士)
• 성별 남
• 생년 1575년(선조 8)
• 몰년 미상 (※ 족보 기록: 1666년 4월 17일 졸)
• 본관 나주(羅州)
• 관련사건 정묘호란
• 대표관직(경력) 의금부도사
• 집필자 이장희
1575(선조 8)∼1666 조선 중기의 의사(義士).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식(仲植), 호는 육우당(六友堂)·숭정야로(崇禎野老). 형(珩)의 증
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사 승임(承任)이고,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녹(漉)이다.
정구(鄭逑)·정경
세(鄭經世)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중후한 성품을 지녀 노성인(老成人)의 기품을 지녔으며,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서 왕이 강화도로 몽진하
자 의금부도사로 왕을 호종하였다.
소를 올려 화의를 배척하며 자강(自强)을 도모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또 소를 올려 시정(時政)과 서북관방의 허술함을 논하고 선정양병(選丁
養兵 : 성인남자들을 선발하여 병사를 기름.)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출정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어, 통곡하며 되돌아와 두문불출하고
소나무· 전나무· 매화· 대나무· 연· 국화를 심고 애완하며 여생을 마쳤는데,
육우(六友)라는 호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영천의 산천서원(山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임오보 서문 중에서>
나(錦陽君 瀰)의 종형(從兄) 영천수(永川守= 영주군수) 호(壕=첨추공 )씨가 개연(嘅然)히 앞
장을 서서 찰방(察訪) 회무(檜茂=六友堂)씨등과 같은 종인들을 창도(倡導)하여
두 보첩을 합쳐 이정(釐正)하니 첫 머리에는 선세의 비갈과 주문 및 휘일을 실어서 바로 그
물이 벼리에 매어있듯 집대성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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