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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태운 차가 옛날 고려장 시절 지게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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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태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5-07 08:21 조회3,9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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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어머니를 태운 차가 옛날 고려장 시절 지게처럼 느껴진다

[중앙일보] 입력 2013.05.07 00:13 / 수정 2013.05.07 00:13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어버이날을 앞둔 휴일, 아들은 차를 몰고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간다. 그동안 벼르던 모자(母子) 둘만의 여행을 오늘에야말로 실행에 옮길 작정이다. 찾아뵐 때마다 모친은 비록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50여 년이나 산 C시를 고향처럼 그리워했다. 옆집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를 한번 더 보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도 했다. 다리가 불편하고 가끔 정신이 들락거려 혼자서는 무리였다.11441618.html?ctg=2002&cloc=joongang|home|today0

 뒷좌석에 모친을 태우고 출발. “C시로 영숙이 어머니 뵈러 간다”고 하니 흐뭇한 표정이 역력하다. 저렇게도 좋아하시는데. 불과 두 시간 거리인데 다짐만 거듭하다 이렇게 늦어지다니.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그나마 빠를 때라고 자위하며 미안한 마음을 누른다.

 “난 이맘때 나뭇잎 색깔이 제일 좋더라.” 차창 밖을 응시하던 모친이 툭 한마디 한다. “여름 것은 너무 진하고, 가을엔 시들어 애닯고….” 뒷좌석에서 슬슬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다. “그때 말이다. 온 식구가 연탄가스 맡았던 날. 영숙이 엄마가 방문 다 열고, 동치미 국물 먹이고, 택시 부르지 않았으면 우리 식구는 다 죽었다.” “준철이 엄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안됐다. 그 곱던 이가 준철이 아버지 간 뒤로 막걸리에 쩔어 살지 않았니. 결국 제 명대로 못 가고.”

 아들도 다 아는 에피소드를 말해주던 모친이 10여 분 뒤 같은 말을 또 한다. “그때 말이다. 온 식구가 연탄가스 맡았던 날….” 자식은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까치 한 마리가 뜰로 날아왔습니다. 치매기가 있는 백발노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요.’ 아버지가 조금 있다 다시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라니까요!’ …옆에서 듣던 어머니가 한숨을 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범아, 너는 어렸을 때 저게 무슨 새냐고 백 번도 더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까치란다, 까치란다, 몇 번이고 대답하시면서 말하는 네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 그래서 네가 말을 배울 수 있었던 거다.’”(『느껴야 움직인다』, 이어령 글, 오순환 그림)

 이른 오후의 C시. 85세 동갑내기 두 여인은 만나자마자 손을 부여잡고 운다. 아들은 밖으로 나와 고향마을을 거닐다 두어 시간 뒤 다시 어머니를 모시러 온다. 돌아오는 길, 모친은 거의 말이 없다. 올림픽대로를 지날 적에 창밖을 보다 한마디 던진다. “세상 좋아졌다지만, 그래도 나는 그때가 좋았다. 젊었으니까.”

 요양원이 가까워지면서 아들은 문득 내가 모는 이 차가 저 옛날 고려장(高麗葬) 시절에 자식이 멘 지게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없이 깊은 숲 속으로 향하던 지게. 너무 마르고 쇠약해진 모친 때문에 사람 실린 느낌조차 들지 않던 지게.

노 재 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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