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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공 배향 '함양 구천서원' 춘계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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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4-10 08:47 조회11,3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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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4월 22일(음력 3월 仲丁일)

장소: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820-1번지







<구천서원>

1701년(숙종 27)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맹지(朴孟智)·양관(梁灌)·표연말(表沿沫)·강한(姜漢)·양희(梁喜)·하맹보(河孟寶)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 훼철되었다. 그뒤 후손들이 불망계(不忘契)를 조직, 구천재와 유허비를 세워 헌례(獻禮)를 올려오다가, 1983년 복원하고 양홍주(梁弘澍)를 추가배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춘당공 맹지>

호는 춘당(春塘). 아버지는 안경(安敬)이다. 일찍이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며, 1454년(단종 2)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권지학유(權知學諭)로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어 1자급이 더하여졌다. 그 뒤 세조가 여러 차례 영직으로 탁용하려 하였으나 관계를 떠나?함양(咸陽)에 은거하여 성리학에 몰두하였다.

세조가 죽자 다시 벼슬길에 올라 1474년(성종 5) 평사(評事)가 되었다. 이 때 북변(北邊)의 병마사인 어유소(魚有沼)의 명으로 왕에게 대전(大箭)과 매와 사냥개를 바쳤다.

이어 왕에게 육진(六鎭)개척 이후 야인(野人)들의 내조(來朝)가 무질서함에 따라 조선이 입는 피해가 큼을 건의하였다.

즉, 야인들이 내조할 때 운(運 : 군대 대오의 단위나 화물 운송 때의 한 묶음)의 일년의 횟수와 한번의 운이 이동할 때의 운의 숫자를 정할 것을 건의하여 이를 시행하게 하였다. 그 뒤 훈도(訓導)·교리·집의 삼가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 함양의 구천향현사(龜川鄕賢祠)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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