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의 龍' 낳은 科擧, 숫자로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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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1.22 23:24
신분 상승 활발했던 조선 시대
한영우 교수, 문과방목·실록 등 뒤져 문과 급제자 1만4615명 출신 분석
정조 때 평민·서얼 등 비율 절반 넘어 "중기 양반 권력 독점은 일시적 현상"
조선 시대 연구자 한영우(75)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장이 조선 시대에 관한 통념 깨기에 나섰다. 조선 시대는 소수의 양반이 대대로 관직을 독점한 특권층 사회였다는 시각을 향해서다. 문과 급제자 명단인 '문과방목' 분석을 통해, 전체 성관(姓貫)의 5%밖에 안 되는 199개 성관이 문과 급제자의 약 90%를 배출했다는 통계결과도 잘못된 생각을 뒷받침했다. 조선이 양반 중심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였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1997년 낸 저서 '조선시대 신분사 연구'에서 조선 사회엔 신분이 낮은 '개천에서 난 용'들의 신분 상승이 활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 팽팽한 논쟁이 이어졌다. 이에 한 교수는 조선 500년간 배출된 문과 급제자 1만4615명의 출신을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했다. 지난 5년간 급제자 명단인 '문과방목(文科榜目)'과 '족보' '실록'을 샅샅이 뒤진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 교수가 이번 주 출간한 '과거(科擧),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에 따르면, 평민 등 신분이 낮은 급제자 비율은 태조~정종 때는 40.4%에서 시작, 태종 때는 50%로 정점을 이뤘다. 연산군 이후엔 20% 안팎이다가 선조 때의 16.72%를 거쳐 광해군 때 가장 낮았다. 다시 숙종대 이후엔 30%대로 오르고, 정조 때 53%였다가 고종 때는 58%나 됐다. 한 교수는 "개천에서 난 용들 가운데는 집안이 빈천한데도 세조 때 홍윤성처럼 영의정까지 된 사람도 있다"면서 "조선은 신분 상승이 활발했던 다이내믹한 사회"라고 했다.
한 교수는 "한국인의 치열한 교육열과 성취욕은 조선시대 이후에도 이어져 대한민국을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린 원동력이 됐다"면서 "그런 문화적 유전인자를 만들어준 시스템이 공부만으로 출세하는 길을 열어준 과거였다"고 했다.
- 한영우 교수
- 출생
- 1938년 7월 12일 (충청남도 서산)
- 소속
-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술원 (원장)
-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 수상
- 2007년 제3회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분야
2007년 제16회 수당상 - 경력
- 2012.02~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술원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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