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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표석' 박세채 정승 살던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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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1-16 08:53 조회10,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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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사진은 '사진자료실'에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마포구 현석동  220)
사진 위의 주소를 클릭하여 지도를 참고하시고
서울 6호선 지하철  4번 출구 뒤로 10m,  남쪽 방향(한강쪽으로) 뒷골목으로 500m 가면
밤섬현대 아파트  정문 옆(관리사무소 앞)에  문순공  '박세채정승 살던곳' 표석이 있습니다.


문순공  박세채

현석 박세채(朴世采)(1631-1695)는 동국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분

으로 오창공 박동량(朴東亮)의 차남 홍문관교리 박의(朴漪)의 아들

이며, 모친은 영의정 신흠(申欽)의 딸이다. 벼슬이 높은 사람보다도

학문이 출중한 사람이 더욱 가문을 빛낸 것으로 인정한다. 이는 학문

을 중시한 조선의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세계적으로도 학문을

제일로 친다. 동국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는 것은 가문을 빛내

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문묘배향인물 1명은 영의정 9명을 배

출하는 것보다 더 중시했다. 정권의 끄나풀보다는 대쪽 같은 학문을

더 존경했던 것이다. 문묘에 배향되었다는 것은 예학의 거두라야 가

능하다. 현석(玄石) 선생은 예학에 관한 많은 저술을 통하여 ‘예학의

대가’로서 학문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의 탕평론과 예학론은 17세기

성리학을 근거로 예학을 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석은 자기가 살던 마포의 지명에서 따온 그의 호. 그의 자택은 마

포구 현석동에 있었으며, 옆에 소동루를 짓고 살았다. 지금은 그 자

리가 밤섬공원으로 변해있다.

박세채의 대표적 저술로는 <범학전편><시경요의><춘추보편>>남

계독서기><대학보유변><심경요해><학법총설><양명학변><남계

수필록><심학지결><신수자경편><육례의집><삼례의><사례변절

><가례요해><가례외편><남계예설><남계시무만언봉사><남계연

중강계><남계기문><동유사우록><주자대전습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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