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강서원(鷺江書院) 치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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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강서원(鷺江書院) 정조대왕의 치제문 |
曉駕逶迤 새벽녘에 길게 이어진 행차가 /
江水之隈 강물이 굽이도는 곳에 이르니 /
峯廻路轉 봉우리 감싸 안고 길이 도는 곳에 /
有廟其崔 우뚝한 사당이 있네 /
侯誰饗之 누구를 제향하였던가 /
猗朴文烈 아, 문열공(文烈公) 박태보(朴泰輔)이니 /
賈董之才 가동의 재능이고 /
余尹之節 여윤의 절의였네 /
臣不愛死 신하로서 죽음을 아끼지 않아 /
囊有一疏 주머니에 한 통의 소(疏)를 바쳤으니 /
一疏之力 상소 한 통의 힘이 /
重於鼎呂 구정(九鼎) 대려(大呂)보다 무거웠네 /
誰敢貳者 누가 감히 두마음을 품을 것인가 /
貳則無倫 두마음을 품는다면 인륜이 없다네 /
卓爾所立 수립한 바가 우뚝하니 /
謇謇王臣 곧은 말을 하는 왕실의 신하였네 /
風水相激 바람과 물이 서로 부딪치면 /
遇石而鳴 돌을 만나 울리나니 /
哿矣詩篇 훌륭하도다 시편이여 /
宛卿平生 완연히 경의 평생을 보는 듯하네 /
江上數峯 강가의 여러 봉우리가 /
藹然盈矚 성하게 눈에 가득 차는데 /
英爽猶存 맑은 영령이 오히려 존재하니 /
酌以秋色 가을 색을 따라서 바치네 /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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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15년(1791) 1월 17일(임진) 7번째기사 사육신의 묘와 사충사 및 충신 박태보의 서원에 근신을 보내 제사를 지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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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노량(鷺梁)을 지나가는데 사육신의 묘와 사충사(四忠祠) 및 고 충신 박태보(朴泰輔)의 서원이 모두 길가에 있었다. 상이 감회가 일어나 직접 글을 지어 근신(近臣)을 보내 제사를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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