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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서해교전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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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8 11:30 조회1,983회 댓글0건

본문

서해교전.bmp




:내아들아!누구를위해 목숨을받쳤니!?

: : :아들아 잘 지내고 있니.
:오늘도 엄마는 너의 이름을 불러본단다.
:네가 너무나 아파했기에 쓰리고
:저미어 오는 가슴 가눌 길이 없구나.

: :중환자실에서 너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고. 성한 데라고는
:머리하고 왼손뿐이었어.
:22개나 되는 링거줄에 의지하고 수많은 기계들
. :3일 만에 죽었다가 심페기능
:소생 기술로 살아났다고 하더라.

: :한 달 되어가면서 의식을 찾은 내 아들.
:왼쪽 다리 빼고 파편 때문 에 대장은 망가졌고
:소장은 일곱 군데 꿰매고 배는 오픈 시켜 반창고로
:붙여놨고 허리는 끊어졌고 왼쪽 척추에 큰 파편이 있고
:화상으로 인해서 푹 패어 그 밑에 인공항문.
:오른쪽 다리엔 신경이 다쳤는지 감각도 없고
:여기저기 파편 조각들이 상처를 내고
:오른쪽 어깨에 총알이 들어있다.
:뱃속에는 파편 쪼가리가 100개가 더 있다고 하더라.

: :깨어나면서 찾? 틸윱?고통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입을 벌리면 서 통증을 호소하니까, 입술이 찢어졌다.
:날마다 떨어지는 저혈압. 수없이 수혈해도 혈소판은
:떨어지고 생과 사가 왔다갔다한다.

: :교전 때 입은 충격일까.
:총알이 날아오고 죽은 대장님이 달려든다
. :환청에 시달리며 눈이 빨갛게 부어 잠 못들고 통증과
:고통에 시달리면서 힘들어 하는 아들의 모습
. :내 손을 잡고 울부짖는다.

: :이 힘든 통증을 어이해야할지.
:침상에 누워 꼼짝도 못하는 아들.
:안쓰럽고 불쌍하고 처참했다.

: :다리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왼손으로 엉덩이쪽을 만지면서 흐느낀다.
:‘엄마, 내다리 어디로 갔어. 저리고 아프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내 다리가 없어졌다.

’ : :이런 현실 속에서
:너와 우리 가족은 피눈물을 토했다.
:네가 왜 총 맞고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냐고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 :너는 물만 한모금 삼켜도 장출혈이 심했다.
:밤이 되면 통증은 더 무섭다고 했다.
:긴 밤을 꼼짝도 못하고 뜬눈
:으로 지새우는 아들. 뼈에 사무치는 고통 때문에
:? 帑窄?엄마가 아프고 싶었다.
:건강하고 씩씩한 아들이었다.

: : 무능력한 부모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너의 상처를 바라보며 사무쳐오는 슬픔을 되새길뿐.
:겨우 고개를 돌려 문쪽만 바라보는 아 들.

: :아빠 엄마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정말 가슴이 아팠다.
:불쌍하 기도 하고. 이런 속에서 약간 호전되더니
:점점 심해져 2002년 9월 1일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주렁주렁 매달린 약병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많은 상처에는 도움이 별로 되지 못했다.

: :엄청난 상처를 뒤로 한 채 9월 20일 새벽,
:저 멀리 하늘 나라로 가버렸다.
:그 힘든 통증 속에서도 살아준 내 아들에게 고마웠다.

: :대전에 너를 묻고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엄마는 왜 이리 슬프고 초라한지 서글퍼진다.
: :6월 29일 국군수도병원으로 간 우리 가족은
:가을이 되어서 피멍 진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 아들 에 대한 보고픔,
:웃음을 잃어버린 가족들
, :내 젊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 :대전을 수없이 다니면서 아들이 한없이 보고싶다.
:처음엔 전사자 여섯 가족은 서먹서먹했지만
:자주 만나다보니 요새는 친하게 지낸다.!

: :2002년은 힘들고 고통을 주는 씁씁할 한 해였다.
:내 응어리진 가슴에 한을 남겼다.
:무슨 약으로도 치유가 안된다.
:평생 흘릴 눈물을 쏟아버렸다.
: :새해가 밝아오지만 아들에 대한 보고픔은 더욱 간절했다.
:「 한 국 주둔 미사령관이 위로의 편지를 보내왔다.
:최고의 대우와 예우를 한다던
:정부와 기관은 전화는커녕 편지 한 통 없다.
:국방부도. 내 젊은 아들은 어느 나라,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말인가.
: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졌다.
:과연 우발이었을까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 :모 신문 인터뷰에서 국정원 내정자라고 한
:서 동만 교수는 서해교 전은 김정일 책임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죽었단 말인가.
」 :많은 상처를 안은 부모 마음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올라 청와대 민원실로 전화했다.
:이런 미친 인간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내정자로 뽑으면 안된다고
:항의했다. 국방부에도 항의했다.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 :2003년 6월 11일 기다리던 아들의 제대날이다.
:대문을 열고‘나 왔어’하는 소리! 가 귀에 들어올 것만 같다.
:문도 열어보고 대문 밖에 나가 서성거린다.
:안절부절못하는 어미의 심정을 누가 알까.
:해가 뉘엿뉘엿 져도 아들은 오지 않는다.
:북받쳐 오는 설움에 남편을 붙들고
:‘왜 동혁이는 오지 않냐?’고 미친사람처럼 목놓아 울었다.

: :치가공과 나와 치공소 차려
:아빠 엄마 행복하게 해준다던 아들.
:씩씩하고 건강하게 반듯이 자라준 아들이다.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장학금 받아 공부한 아들이다.

: :6월은 힘들다. 내 아들의 흔적들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녀본다.
:마음이 편치가 않는다.
:여러 사람들 중에 해군이 보이면 눈이 번쩍인다.
:혹시 내 아들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 :동혁아, 세상에 태어나 피어보지도 못하고
:너는 가버렸지만 엄마 는 너를 너무너무,
:엄마의 분신(扮身)보다도 너를 사랑했다.
:반듯하게 잘 자라준 아들에 대한 연민일까.
:오늘도 내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해가 저문다.
:총소리, 전쟁없는 하늘 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자.

: :이 글은 엄마가 하늘나라에 부친다.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로. 서해교전 부상자를 치료해준
:수도병원 모든분들게, 성금을 내주신!
:국민 여러분들게 감사드립니다.

: :서해교전당시 중상을 입고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받다

: :같은해(2002) 9월20일 숨진

: :고 박동혁병장의 어머니 이경진 씀


너무 슬픈이야기..

벌써 서해교전이 5년이나 지났네요..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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