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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반남박씨 금계군 종택 고전적 기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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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3-30 09:11 조회5,1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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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반남박씨 오창공 종손댁에 소장되어있던

보물 제1724호 박사익초상과 보관함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만력기축 사마방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50호 박동량 호성공신교서 등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오창공댁 종손부부, 대종중 총무, 서계공댁 종손부부등 함석한 가운데 기탁식을 진행했다






1.박사익 초상


종 목  보물  제1724호 
지 정 일 2011.11.01
소 재 지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박만춘


박사익(1675~1736)
 조선조 후기 경종,영조 때의 문신이다.본관은 반남이며, 자는 겸지, 호는 노주, 시호는 장익이다. 박동량의 후손이며,참봉 박필하의 아들이다. 1710년(숙종36)생원이 되고,171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으로 발탁,설서를 겸하였다. 검열, 정언, 수찬을 역임하고, 도당록에 선발되었다. 그 후 1717년 70세에 가까운 노부모의 봉양을 위해 외직을 자청하여 강서현령을 나갔다. 이어 부교리를 거쳐 당시 대리청정하던 왕세자 경종을 위하여 시무에 가장 절실한 상소를 올려 채택되었으며,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


경종 즉위 후 전라도관찰사를 거쳐,노론과 소론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공신회맹에 불참한 죄로, 태인에 귀양 갔다가 다시 청하로 이배되었다. 영조가 등극하자 귀양에서 풀려 직첩을 돌려받았으며, 이조참의를 거쳐 강화유수에 임명되어 강화의 성곽을 보수하였다.


1727년(영조3)특지로 병조판서가 되고, 이어 금원군에 봉해졌으며, 대사헌을 거쳐 형조, 공조, 예조판서를 지내고, 좌참찬이 되었다. 1736년(영조 12)에 졸하였다. 글씨에 뛰어나 <우의정민진원비>,<예조참판안적비> 등이 전하고 있다.


<박사익 초상>은 화폭의 오른 쪽 상단에 ‘금원옹52세상’이라는 표제가 적혀 있는데, 오사모에 녹색 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이다. 얼굴은 오른 쪽으로 살짝 돌린 좌안8분면이며, 손은 공수자세를 하고 있다. 사모의 높이는 제법 높아 영조연간 초기의 모제를 반영하고 있으며, 가슴에는 종2품벼슬아치임을 지시하는 학정금대와 아울러 쌍학문양의 흉배가 보인다. 의자에는 호피가 깔려 있으며, 족좌대위에 팔자형으로 벌린 양화사이로는 호랑이 얼굴이, 그리고 족좌대 바깥쪽으로는 호피의 양 발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또한 바닥에는 채전도 돗자리도 깔려 있지 않다.


안면은 전체적으로 밝은 살색을 주조로 하고, 보다 짙은 색선으로 외곽선과 이목구비를 규정하였다. 눈썹은 옅은 먹선으로 중간에서 끊겼다가 다시 시작하는 등 정성스레 묘사하였으며, 양 안두에는 붉은 색을 살짝 삽입하였다. 윗 눈꺼풀과 아래 눈꺼풀은 검은 선으로 묘사하고, 속눈썹은 위에만 그려 넣었다. 산근과 와잠의 아랫면, 그리고 미간과 이마 등에 붉은 색조로 선염처리함으로써,안면에 입체감을 주고자 하였다. 수염은 밑에 니금색을 칠하고 한 올씩 그려 넣었는데, 숱은 적지만 단아한 느낌이다. 미간 사이의 세로 주름 선과 귀밑 점 등 박사익의 개성적 특징을 잘 포착해내었으며, 전체적으로 약간 경직되고 근엄한 표정을 통해 그의 성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옷주름 선은 선묘를 기조로 하면서도 주름선 주위에 약간 짙은 색으로 선염하여 주름진 부위를 지시하고자 했으며, 당시의 복제대로 넓은 소매통으로 인해 공수한 부분 아래쪽으로 주름진 부위가 늘어져 있어 약간 씰그러진 느낌을 주는데, 이 점은 18세기초 관복본 초상화에 나타나는 한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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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력기축 사마방목


종 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지 정 일 2011.03.08
소 재 지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시 대 조선시대


이 방목은 필사본이지만 조선 전기의 학인 1백여 명에 대한 전기 자료를 수록하고 있어서 조선전기 인물의 전기자료 연구와 과거제 연구의 자료로서 가치가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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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동량 호성공신교서


종 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50호 
지 정 일 2011.03.08
소 재 지 경기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시 대 조선시대


이 교서는 처음에 발급된 공신교서의 원본은 아니지만 재발급된 교서의 사례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문서의 발급, 관리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인정된다.
 

박 응복의 막내아들인 박동량(1569~163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형조판서, 의금부판사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병조좌랑(정6품)으로 왕을 의주에 호종하여 호성2등공신으로 금계군에 봉해졌다.계축옥사 때 대북파가 조작한 유릉 저주사건을 시인, 폐모의 구실을 주었다.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저서《기재사초》, 그림《농가풍경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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