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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황손 이광 서거 60주년 추모[브레이크뉴스-201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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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관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2-10 11:25 조회3,5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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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황손 이광 서거 60주년 추모
 
박관우 국제칼럼니스트 icon_mail.gif
오늘은 바로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 재일 유학생들이 3.1운동의 전주곡(前奏曲)이라 할 수 있는 2.8독립선언을 발표한지 정확히 93주년이 되는 날인데, 이러한 날에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은 황손을 소개하고자 하니 그는 바로 의친왕의 아들로서 일제의 학병징집을 과감히 거부한 이광 황손이며, 올해가 그가 서거한지 60주년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학병징집을 거부하였던 이광 황손은 과연 누구인지 그의 32년의 불꽃같은 생애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광 황손은 1921년 사동궁(寺洞宮)에서 의친왕과 당시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송씨 사이에서 탄생하였으며, 6세때 남연군(南延君)의 종가(宗家)인 계동궁(桂洞宮)으로 양자(養子)가게 된다.
 
경성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학습원 전문학교 이공학과를 마치게 되는데, 여기서 그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동경제국대학 독어학과 재학중에 일제로부터 학병징집을 강요받게 되나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하였던 그는 그러한 일제의 강요를 과감히 거부한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저항에 대하여 일제는 당시 그를 함남 원산의 철공장으로 강제 징용을 하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탄압을 받던 중에
신경쇠약에 걸리게 된다.
 
그리하여 서울로 다시 온 그를 의친왕비가 직접 남연군(南延君) 묘소가 있는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데리고 가서 요양을 시키면서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었다.
 
한편 해방이후 서울대
국문학과에 편입하여 1948년 8월 10일 졸업하게 되며, 숙명여전과 이화여고에서 강사로 있다가 당시 외무부 구미과(歐美果) 3등서기관으로 재직하던 중에 6.25전쟁이 발생하여 부산에서 재직하던 중 안타깝게도 1952년 신선대(神仙臺)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溺死)하였는데, 당시 32세라는 젊은 나이였다.
 
그는 평소에 중절모를 쓰고 검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었다고 하는데,이런 그의 모습 하나만 보더라도 민족의식이 강하였으며,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컸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이광 황손이 웅장한 포부도 제대로 펼쳐 보이지 못하고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서거한 것을 비통하게 생각하며, 그의 서거 60주년을 추모하면서 특히 황손으로서 일제의 학병징집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고난의 길을 택한 그 항일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pgu77@hanmail.net
 
*필자/박관우. 국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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