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062
  • 어제801
  • 최대1,363
  • 전체 308,096

자유게시판

한말씀 더 올립니다.

페이지 정보

승주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8 10:46 조회1,902회 댓글0건

본문

 

저는 호장공 24세 승주입니다.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배제하기 위해 저의 파명, 고향, 직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저의 나이는 이순(耳順)입니다. 아래 글은 대종중 홈페이지를 비롯하여 몇몇 개인들께서 운영하시는 홈페이지를 통해 읽은 글들에 대한 소회를 간략히 피력한 것입니다. 나름대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조심하기는 했지만 혹 이 글 때문에 마음이 상하신 분이 계신다면 사과드립니다. 특히 종중의 어르신들께 삼가 송구스러운 마음을 올립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반남박씨 대종중 홈페이지를 비롯하여 창서씨가 운영하시는 홈페이지, 그리고 찬무씨가 운영하시는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몇몇 글들을 접하면서 좀 의아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들 중에 대종중 임원님들의 업무집행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불만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종토(宗土)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보/족보 편찬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종토 문제는 그 내막을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라 “아, 그런 문제가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수준에서 끝나곤 했으나, 세보/족보 편찬과 관련된 문제는 저 자신도 관심이 좀 생겨서 한 두 마디 거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세보, 족보, 시조, 선조 등의 용어 사용과 관련된 논란이 비등한지라 감히 제 생각을 몇 곳에서 피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어 차례 토론에 참여를 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다 보니 어딘지 몰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지요. 저는 그저 학구적인 입장에서 감정적인 편견 없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보겠다는 순진한(?) 생각에서 그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괴이하게도 읽는 분들의 태도에 따라 본의와 다른 방향으로 오해되고 때로는 엉뚱하게 곡해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에는 우리 반남박씨 내부의 특정 지파에서 추진하는(또는 했던?) 파보 편찬과 관련된 글들이 심심치 않게 몇몇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이미 말씀드렸듯이 지금까지 저는 종중의 일에 거의 무관심한 편이어서 “화양회”라는 모임이 어떤 성격의 조직인지 잘 모르고 있었으나 올라온 글들의 문맥에서 미루어 짐작하건대 문강공(야천) 휘 소(紹) 할아버님의 후손들이 모여 만든 친목회의 성격을 띤 단체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전혀 문제될 것도 없고 이런 저런 논란의 대상이 될 만한 이유를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국법을 어기지 않는 한, 집회나 결사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나아가서 특정 지파에서 그 지파의 후손들만 모아 놓은 파보를 만드는 것도 어느 누구도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그것 역시 전적으로 해당 지파의 자유이며 또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반남박씨 내부에서 특정 지파가 모임을 만든다든가, 파보를 만든다든가, 또는 홈페이지를 구축(構築)한다든가 하는 행위는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생각입니다.
문강공 휘 소(紹: 11世)와 이른 바 5응(應)(12世) 17동(東)(13世)을 포함한 그 후손들은 우리 반남박씨 문중을 조선 중후기 최고 문벌의 하나로 우뚝 솟게 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분들이므로 오늘날 그 후손들이 가지고 있을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할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창공 휘 동량(東亮)(13世)의 후손들 중에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과 더불어 문묘에 배향되어 동국 18현의 반열에 오른 현석 휘 세채(世采)(15世)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 최고의 문장가요 문학자요 실학자였던 연암 휘 지원(趾源)(19世) 등, 참으로 청사에 길이 빛날 보석과 같은 존재들이 돋보입니다. 따라서 그 후손들이 조상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모임을 만들고 파보를 만드는 것은 자유이며 또 어느 의미에서는 조상을 받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우리 반남박씨 전체의 화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일이며 시시비비를 가려 고칠 것은 고쳐야 할 것이라 사료됩니다.
어떤 동질적 집단 내에서 더 세부적인 동질성을 공유한 사람들이 새로운 소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늘 있어왔던 일이므로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소집단이 단순히 친목의 성격을 넘어 그 소집단 외부의 사람들에 대해 선민(選民) 의식이나 배타적 의식을 갖는다면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훌륭한 조상을 기리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한 긍지와 자랑스러움이 도를 지나쳐 국외자(局外者)들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멸시하는 행위에 이르게 되면 그 소집단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필경 소집단 속에 또 다른 소집단이 생길 것이며 종국에는 사분오열되어 분파주의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왕후장상(王侯將相), 고관대작(高官大爵)을 배출한 가문이라 하더라도 조상 자랑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게 무슨 의미를 갖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솝 우화 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또한 벼슬이 높고 학문이 높고 덕망이 높은 조상을 가진 집안의 후손들 중에는 조상의 명성을 더럽힌 자들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지 않습니까? 반면에, 비록 옛날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상인”(常人)의 집안에서도 국가와 민족에 공헌한 인물을 배출한 예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과거의 조상이 현재의 후손들의 위상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더욱이 조상의 명성에 취한 나머지 국외자(局外者)를 경멸하고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경멸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우리 반남박씨 가문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지만 우리 모두 언제나 경계해야 할 태도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파보 만드는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몇몇 지파에서 이따금 파보를 편찬 발간하는 사례가 없지 않은 것 같은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 반남박씨 전체의 족보/세보가 제대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굳이 각 지파들이 독자적으로 파보를 만드는 것은 낭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족보/세보 만드는 절차와 과정에 대해 문외한인 저로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만약 종인들의 합의에 의해서 제대로 된 세보를 만든다면, 또 다른 파보를 만드는 것은 솔직히 말해 돈과 시간과 노력의 낭비라고 판단합니다.
전체 종인들이 등재되는 대보의 경우 보책의 권수가 늘어나고 거기에 따라 경비가 늘어나며 결국 출판된 보책을 구입하는 가격이 높아지게 되어 일반 종인들의 부담이 심해진다면, 대보 구입을 필요한 부분만 할 수 있게 허용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가령 ***파는 몇권, @@@파는 몇권 등으로 분책하여 판매/구입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필요한 사람들은 전체 대보를 모두 구입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파보를 굳이 편찬 출간할 필요가 있다면 대보 출판 간격의 중간에 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2010년에 대보가 출간되고 약 30년 후인 2040년에 그 다음 대보를 출간한다면 그 중간인 2025년에 파보를 출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파보의 편찬은 약 15년 뒤의 대보 출간을 위한 예비 자료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좀 더 보완하여 대보를 출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파보 출간 때문에 대보 출간을 못하게 되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른 종인들 간의 불필요한 반목과 불신을 배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본(本)이 같다” 함은 같은 조상의 핏줄이라는 뜻이니 서로 간에 헐뜻고 질시하는 일을 없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이런 저런 논쟁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때로는 언성을 높일 수도 있고 얼굴을 붉힐 수도 있으며 서로 다른 견해 차이로 대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난상공론(爛商公論)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므로 논쟁 자체를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거 없는 무고나 모함 또는 비방이 아니라면 불평, 불만도 받아들여야 하며 건전한 비판은 오히려 환영해야 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 자신이 하는 일을 비판받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지도자의 입장에 계신 분들은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만약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시인하고 고쳐야 할 것입니다.
또한 비판을 하는 쪽에서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방만 일삼는다거나 논리도 합리성도 없이 자기주장만 고집한다든가 또는 감정적인 인신공격으로 일관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곧 종중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며 상대방의 입장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정확하고 분명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절차에 따라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빛나는 조상의 지혜를 이어받아 어떠한 어려움에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우리 모두 지성과 덕성을 가지고 때로는 “싸우면서” 때로는 양보하면서 대도를 걸어갑시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조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자랑스러운 조상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임을 깨닫도록 합시다. “아이는 어른의 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후손들을 생각합시다. 감사합니다. 2007년 5월 24세 승주 근서. (추신: 주제넘은 제 말씀에 대해 깊은 양해를 구하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