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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와 외규장각 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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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11-28 16:37 조회5,8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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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와 외규장각 의궤

아래의 글은 전주이씨 종보 ‘李花’에서 李秉夏님이 쓴

‘145년 만에 귀환한 외규장각의궤 특별전을 관람하고서’에서 일부를 발취해온 글입니다

顯穆 綏嬪 徽慶園 園所都監儀軌 현목 유빈 휘경원 원소도감의궤

1866년 음력 9월 1일 로즈제독은 군함 6척과 1230명의 군대를 인솔하고 조선을 침공하려고 인천앞 바다에 도착했고 음력 18일 한성근교 양화진, 서강 일대에 나타나자 한양은 점점 공포와 혼란속에 빠지게 되고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점령하였다.

프랑스 군대는 2개월 후 물러났지만 민간인 살상 도적질 외규장각을 습격하여 전쟁후유증을 낳게 하였으며 이때 규장각의 보물을 훔쳐갔고 그것이 왕실 도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로 돌아간후, 남긴 그들의 기록은

“외 규장각 서가 안에는 2절 크기의 왕실에 대한 기록이 있었고, 공자의 저서 의학서적 등과 4절지 크기의 조선역사서 등이 모두 수천권이 있었다.

우리는 좋은 지질의 수많은 책을 보았다. 경첩, 결쇠는 구리로 된 쇠붙이였고, 제본 기술을 보고 감탄했으며 이 책들이 비단 천으로 쌓여 있었다. 모두 붉은 색과 금빛으로 칠한 나무상자에 들어 있었다. 잘 정리된 왕실도서였다“

그해 11월 22일 프랑스 군대는 강화도를 떠났다. 그러나 우리손실은 너무 컸다. 외규장각에 있던 도서 중 345권, 은괴 19상자를 잃어 버렸다. 잃은 것이 아니라 약탈당했다. 철수하면서 외규장각을 불태웠다.

그결과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한 박병선 박사가 1993년 어느날 지하 창고에서 조선시대 의궤를 발견하였다.

조선의 의궤는 세계 유일무이하다

세익스피어 괴테 호머 미켈란제로 등 어느 누구의 작품도 이에 맞설수 없는 걸작이다.

프랑스 미데랑 대통령이 1993년 대한민국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방한하면서 ‘顯穆綏嬪徽慶園園所都監儀軌 ’ 상권을 반환하며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약속했지만, 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그로부터 18년이 되어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으로라도 보게된 것이다.

의궤는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 행사 과정과 의례절차, 내용 등을 기록한 그림으로 정리한 의례 또는 의식이 궤범이 되는 책이다.

이런 의궤의 상징적인 가치보다는 우리역사에서 빼앗겼던 정신의 영토를 되찾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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