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원종공신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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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원종공신 일등
박태용 동량-자-세집-태용
박필기 동망-유-세헌-태창-필기-사륜
박필재 동위-여-세준-태서-필재
박필신 동량-의-세채-태은-필신
박필주 동량-미-세교-태두-필주
박필준 동렬-호-세격-태겸-필준
朴致隆 薑---- 璡-大健一開-斗益-泰興-致隆
박사익 동량-미-세교-태두-필하-사익
박사수 동도-해-세면-태정-필명-사수
박사한 동민-환-세성-태적-필정-사한
박사임 동선-정-세견-태상-필순-사임
박사렴 동렬-호-세모-태장-필성-사혐
자료: 왕실도서관 장서각 양무원종공신도감 出典
양무공신(분무공신)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훈호(勳號) 또는 그 훈호를 받은 사람.
1등은 실제로 난의 진압을 총지휘한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으로, 수충갈성결기효력분무공신(輸忠竭誠決機效力奮武功臣)이라 하였다.
2등은 직접 일선에서 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 박찬신(朴纘新)·박문수(朴文秀)·이삼(李森)·조문명(趙文命)·박필건(朴弼健)·김중만(金重萬)·이만빈(李萬彬) 등 7인으로 수충갈성효력분무공신이라 하였다.
3등은 역시 토역(討逆 : 반역을 토벌함.)에 종사한 조현명(趙顯命)·이수량(李遂良)·이익필(李益馝)·김협(金浹)·이보혁(李普赫)·권희학(權喜學)·박동형(朴東亨) 등 7인으로 수충갈성분무공신이라 하였다.
이들 중 김중만은 뒤에 고변자를 2등으로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로 3등으로 강등되었으며, 조문명은 왕세자의 장인일 뿐 별다른 공이 없다고 하여 물의가 있었다.
공신책봉에 따르는 토지지급과 같은 은전은 없었으며, 단지 공신녹권을 지급하여 후손의 녹용(錄用)을 보장하고 당사자의 자품(資品)을 올려주는 데 그쳤다. 이 분무공신 책봉을 끝으로 이후의 조선시대의 공신책봉은 없었다.
※ 양무 공신 2등에 서포공후 양정공 (박필건)이 이인좌난 평정에 참여하여 정공신으로 수충갈성효력분무공신 공훈를 받음
분무공신을 후에 양무공신으로 바꿈
원종공신: 정공신에 등외공신을 원종공신이라 하여 논상(論賞)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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