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에대한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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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석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7-15 22:24 조회3,653회 댓글0건본문
金時習의 대한 재평가
朴世堂은 인생의 사표(師表)로서 매월당 김시습을
추모하고 그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다.그는 충청
도 홍산면 무량사에 모셔져 있는 김시습의 초상화
를 보러 가기도 했다.
그때 그가 무량사에 초상화를 모신 유적을 보면서
느낀 감회를 쓴 글에는 김시습에 대한사모의 정이
잘 나타나있다.
不讀梵經不坐襌
불경도 안 읽고 좌선도 안했는데
出家因似在家年
출가의 인연이 재가의 해와 같다
狂歌痛哭非無賴
미친 노래로 통곡하고 의지하며
孤月寒梅夙有綠
등외로운 달 찬 매화와 인연 맺었다
藤蔓蘢階草覆逕
칡넝쿨계단에 우거진 풀 길을 덥고
深林秋晩斷人行
깊은 숲 늣가을 인적이 없다
巖栖寂莫對遺跡
바위틈 적막만이 남은 자취 마주하고
招蒼空懷千古淸
공허 한 마음 천 년의 맑음을 회상하니
空山落日客心哀
빈산,지는해에 나그네 마음 쓸쓸하다
黃葉蒼苔遍古臺
가을 낙엽 푸른 이끼 낡은 대에 깔려 있고
浮世萬綠己了何
허무한 세상 여러 인연 끊고
何湏到此更徘徊
언제 다시 여기 와서 거닐어 볼까
무량사에 다녀와서 그는 그 자신의 거처인 수락산 석촌동에 梅月堂 영정을 모신 사당을 건립하고 자금을 모으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그 는 이 사업을 개인 일이 아니라 당시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하여 金時習1435-1493이 거처했던 옛터에 사우를 만들고 양주의 선비들과 소를올려 청절사(淸節祀)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1680년(숙종6년)마침내 동봉아래에 영당이 완성되였고 (현재노강서원자리)1686년에는 무량사에서 베껴 그린 초상화를 봉안하여 봄 .가을로 향사를 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1700년(숙종26년)양주 사람들의 청액운동으로 이듬해인 1701년(숙종27)에 조정으로부터"청절사.라는 편액(扁額)을 받게된다. 이것은 朴世堂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마무리된 추모사업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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