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 왜란 충신 춘당공 후 박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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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자기마을에서 수천의 의병을 모아 서부 경남의 왜적을 무찌르셨다.
그후 왜병이 집을 찾아와 항복을 권했으나
"내가 차라리 의를 지켜 죽을 지라도 불의에는 굴하지 않는다 " 하고
적의 칼을 받아 세상을 하직 하셨다.
선조조에 정려를 내리셨다.
정려각: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덕암리
그후 왜병이 집을 찾아와 항복을 권했으나
"내가 차라리 의를 지켜 죽을 지라도 불의에는 굴하지 않는다 " 하고
적의 칼을 받아 세상을 하직 하셨다.
선조조에 정려를 내리셨다.
13세 휘 박손
충신공(忠臣公) 朴손(艸+選) 은 字는 경실(景實) 號는경재(景齋) 이시다
임진 왜란때 창의하여 토적하다가 순절하셨다 항복을 권했으나 차라리의리를 지켜 죽을지라도 굴하지 않겠다고 하고 적의칼을받아 세상을 하직하셨다
선조 조에 정려를 네렸는데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에 군 문화재로 남아있고
대구 망우당 공원내 임란 호국 영남 충의단에 봉안되셨읍니다
春塘公은 고조이시고 부사맹(副司猛) 桂幹 증조이시다 용호(龍湖)공의 당숙 이기도하다
창의: 난국을 당하여 의병을 이르킴
토적: 도둑 역적을 토벌함
순절: 충절과 정절을 지키다 죽음
정려: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동네앞에 정문을 세워 포창함
정려각: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덕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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