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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연암형님 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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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춘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5-25 09:56 조회4,288회 댓글0건

본문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 我兄顔髮曾誰似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 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 / 今日思兄何處見

두건 쓰고 옷 입고 나가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 / 自將巾袂映溪行

정조 11년(1787), 58세로 죽은 형 박희원을 생각하며 지은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그리다[燕巖憶先兄]>라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얼굴 모습과 수염을 꼭 닮아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형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1ㆍ2구. 하지만 그 형님마저 이젠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주던 형님이 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연암 골짜기로 몸을 피해있던 박지원은, 그런 형님이 문득 그리워졌다. 이제 형님의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볼 것인가? 형님과 자신이 닮았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래서 의관을 정제하고 시냇가로 나가 흐르는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형님의 자취를 찾아본다는 3ㆍ4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형과 아우로 이어지는 끈끈한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혈육이라고 하는 것이 뭐기에, 그리도 생김새조차 쏙 빼닮고 나오는 것인지. 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형제는 그토록 닮았고, 그래서 누구보다 정겨운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형을 잃은 슬픔을 애잔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박지원의 슬픔을 200년이 넘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 여기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고전이 주는 경이로운 체험이다. 고전을 옳게 이해하려면 이처럼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당대인의 마음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 비로소 고전의 의미가 되살아나고, 그것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흥부전」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18~9세기로 되돌아가 읽어야 하며, 『금오신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15세기로 되돌아가 읽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흥부전」과 같은 판소리계 소설을 읽을 때는 민중의 마음으로 읽어야 하고, 『금오신화』와 같은 한문소설을 읽을 때는 소외된 지식인의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당대 민중이 「흥부전」에서 말하고 싶은 것과 김시습이 『금오신화』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왜 그리도 사랑받는 고전이 되었는가도.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이 현재를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어떤 삶의 지혜를 속삭이고 있는지도 듣게 될 것이다. 낡은 고전이 새로운 고전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고전을 읽으면서, 거기에 담긴 옛사람의 진정(眞情)을 느껴보려는 마음가짐을 별로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저 유명한 고전이라니까 의무감에서 읽고, 요즘의 눈으로 멋대로 재단하기 일쑤인 것이다. 하지만 고전을 고전답게 감상하는 법은 ‘지금/우리’와 ‘과거/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보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퇴계 이황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할꼬?

그러하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옛사람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보는 것이고, 옛사람이 품었던 마음을 다시금 느껴 보려는 뜻 깊은 여정이다. 그러고 보니,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서문에 인용하여 일약 국민적 명언(名言)이 되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조선시대 문장가였던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물론 유한준은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도 유홍준은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순서를 뒤바꿔 기억하고 있다가 그만 잘못 인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착각에서 오히려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랑하는 것과 아는 것은 본디 하나라는 사실 말이다. 알게 되면 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더 잘 알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알면 알수록 사랑이 깊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면 알수록 사랑이 식어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고전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알면 알수록 애정이 깊어지는 것은 진짜 고전이지만, 알면 알수록 애정이 식어가는 것은 가짜 고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출처.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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