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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선조의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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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5-19 09:16 조회4,935회 댓글0건

본문

                                사진설명
                                1.  금주군  선정비
                                2.  남원, 열녀각 주생면 위치 지도
                                                 3.  남원군 주생면 영천리 열녀각


1 금주군 선정비
(부사 박정 선정비)

남원  광한루원  춘향사당 옆 담장밑에는 30기의 비석이 두줄로 나란히 서 있다. 이 비석은 이곳과 인연을 맺은 부사, 관찰사. 어사들의 선정비, 선덕비 등이다.

이 비석이 예전에는 동헌이나 부내 여러곳에 있다가 광복후에 이들 비석의 보존과 미화책으로 광한루원에 모아 관리하게 되었다.

비석군 역시 한 장소에 이처럼 많이 있는 곳도 찾아보기 드물다.

그중에  금주군 휘 정(炡)은 남원 부사 재직중

남원 관내에 도적을 색출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박정 1596(선조 29)~1632(인조 10). 소-응천-동선- 정

좌참찬 동선(東善)의 아들이다.

1619년(광해군 11)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로 보임되었다가 아버지가 폐모론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양사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자, 사직하고 시골에 내려와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靖社)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같은해 홍문관정자․박사를 거쳐

다음해 사간․응교․장령․집의․검상 등을 역임하였다.

1625년(인조 3) 대사헌이 된 남이공(南以恭)을 부응교 유백증(柳伯曾), 교리 나만갑(羅萬甲) 등과 함께 광해군 때에 당파를 만들고 권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탄핵하였다가, 오히려 함평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2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다음해 동부승지가 되어 호패법을 강화하자고 주장하였고, 그뒤 대사간․병조참지․병조참의를 지냈다.

이어 강원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않았으며,

다시 대사간으로부터 붕당을 만들고 자기파를 천거하였다는 이유로 좌천되어 남원부사가 되었다.

그가 남원부사로 임명될 때에 새 수령을 영접하러 나온 아전이 그를 보고는 젊은 사람이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으며, 오똑하게 단정히 앉아 있어 그 마음속을 알 수 없다.

고 칭찬하였다.

이 당시 그는 관내의 도적을 색출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금주군(錦州君)에 봉하여지고

1631년 대사간․대사헌을 거쳐 이조참판에 특진되었다가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소서파(小西派)의 핵심 인물로 비록 말은 과감하게 한다는 칭찬이 있으나, 급하고 곧은 뜻이 지나쳐 자기 의견만을 주장하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2  방세정의처 열녀각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열녀.

본관은 반남(潘南). 사인(士人) 방세정(房世挺)의 아내이자,

참판(參判) 길주공 박동망(朴東望)의 손녀이다.

방세정의 처 박씨는 혼인한 뒤 몇 개월 되지 않아 남편이 요절(夭折)하였다. 그녀는 손을 가슴에 모은 채 피눈물 속에 하루 밤을 시체를 끌어안고, 음식 한 점을 입에 넣지 않고 죽기로 맹세하였다. 그러다가 목을 매어 죽고자 했으나 사람들이 와서 구했다. 그러자 다음에는 옷으로 막아 가린 채 시체 옆에 누워 자진(自盡)하였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 유매마을회관 옆에 열녀각이 있다.

족보: 1-19 박동망(朴東望)-유(瀏)-방세정(房世貞)

방세정 무후(无后) 남양인(南陽人) 부(父) 현감(縣監) 원량(元亮)




3.남원 부사 박종대(朴宗大) 선정비

20세 朴宗大 (1768-1843)  1-83  泰輔-필모-사윤-存源-종대

증 이조참의


<조선왕조실록>

순조13년(1813 계유 / 청 가경(嘉慶) 18년) 4월 15일(임자) 1번째기사

전라도 암행 어사 홍대호(洪大浩)의 서계에, 전주 판관 박종대(朴宗大),

<승정원일기>

정조 23년 6월 19일 (병오) 원본1810책/탈초본96책 (37/52) 1799년

○ 又啓曰, 蔭仕六品官之陞五品者, 每於過都目後照擬, 朴宗大爲陵參奉

순조 3년 1월 9일 (을해) 원본1862책/탈초본98책 (27/47) 1803년

○ 吏批, 再政。 朴宗大爲刑曹正郞,

순조 7년 6월 22일 (임진) 원본1928책/탈초본102책 (12/23) 1807년

○ 都政。 吏批, 朴宗大爲丹陽郡守,

순조 13년 4월 16일 (계축) 원본2027책/탈초본106책 (27/30) 1813년

○ 朴宗正, 以義禁〈府〉言啓曰, 咸悅前縣監宋仁載, 拿問嚴勘, 全州判官朴宗大,

순조 18년 2월 5일 (계유) 원본2092책/탈초본108책 (37/50) 1818년

○ 有政。 吏批, 朴宗大爲南原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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